AI가 없앤 야구계 '마태효과'…노동시장에도 적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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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의 경제야 놀자공격 전 부문 상위권을 달리며 기아타이거즈의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는 김도영(20). 고비마다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라이온즈의 중심 타자로 활약 중인 김영웅(20). 시속 150㎞대 속구를 무기로 두산베어스 필승 계투진에 들어간 김택연(19). 시즌 3분의 1을 소화한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선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여느 해보다 두드러진다. 뛰어난 선수들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투수가 판단 애매한 공 던졌을 때
심판은 유명선수엔 '스트라이크'
무명엔 '볼' 판정할 가능성 높아
올해 ABS 도입하자 루키들 활약
학벌·성별 등에 따른 사회적 격차
AI가 능력 평가하면 줄어들 수도
류현진은 왜 부진할까
젊은 선수들의 활약상을 좀 더 살펴보자. 지난 3일 현재 내국인 타자 OPS(출루율+장타율) 상위 30명 중 13명이 29세 이하 선수다. 작년엔 30위 내 20대 선수가 7명에 불과했다. 내국인 투수 평균자책점 10위권에 든 20대 선수도 작년 5명에서 올해 7명으로 증가했다.야구계 안팎에서는 올 시즌 도입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이 영건의 약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BS로 야구계의 ‘마태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태 효과는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1969년 주창한 개념이다. 머튼은 무명 과학자가 저명한 과학자와 비슷한 연구 성과를 내도 연구비 지원은 저명한 과학자가 많이 받는 현상을 마태 효과라고 했다. 그런 현실을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마태복음 구절에 빗댄 것이다.
야구계의 마태 효과는 심판이 유명 선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정하는 경향을 뜻한다. 제구력이 좋기로 유명한 투수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모호한 공을 던졌을 때 대충 들어왔겠거니 하고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ABS는 누가 유명 선수인지 모른다. 따라서 유명 선수에게 유리하게 판정하는 편향도 없다. 이런 변화는 베테랑보다는 젊은 선수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스트라이크존? 그때그때 달라요
그래도 설마 심판이 선수 이름값에 따라 편향된 판정을 내릴까. 한국엔 이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와 연구 결과가 부족하다. 대신 우리에겐 메이저리그가 있다. 메이저리그는 인간 심판이 볼 판정을 내리지만 피치FX라는 투구 추적 시스템으로 판정의 정확도를 검증할 수 있다.김원용 럿거스대 교수와 브레이든 킹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2014년 발표한 ‘메이저리그 판정의 마태 효과와 지위 편향’ 논문이 흥미롭다. 논문은 심판이 올스타로 여러 번 선발된 투수에 대해서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비율이 높고,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하는 비율은 낮다는 점을 밝혀냈다. 올스타 경력이 없는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받는 비율이 높았다.
심판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선수 이름값 말고도 많다. 대니얼 해머메시 텍사스대 교수 등은 2004~2008년 메이저리그의 투구 350만 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심판이 같은 인종인 투수에게 후한 판정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메이저리그 심판의 89%, 투수의 70%가 백인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엔 좁아지고 스리 볼 이후엔 넓어지며, 같은 코스에 들어간 공도 원정팀 투수가 던졌을 땐 볼로 판정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태 효과와 기득권 편향
메이저리그 볼 판정에서 드러난 마태 효과는 야구를 넘어 광범위한 함의를 지닌다. 과거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유리한 판정을 받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가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면 선수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를 노동시장에 적용하면 비슷한 성과를 내도 성별, 연령, 학벌 등에서 기득권에 속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후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격차와 불평등이 마태 효과와 같은 기득권 편향으로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ABS가 정말 젊은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는 더 지켜보고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 심판이 저지를 수 있는 편향, 야구계의 마태 효과는 사라졌다. 우리 사회 다른 분야에도 ABS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