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100년 후 연금까지 고민하는 일본

김일규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연금으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들은 오는 14일 수급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달부터 공적연금 지급액이 모처럼 2.7%나 오르기 때문이다. ‘3층 구조’ 연금에서 1층인 기초연금(전 국민 대상)은 40년 가입 기준 매월 약 58만원에서 59만원으로 인상된다. 2층인 후생연금(직장인 대상)은 40년 근속 기준 약 197만원에서 202만원으로 오른다.

전년도 물가 상승률만큼 매년 연금액이 오르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쉽게 수급액이 인상되지 않는다. 2004년 연금 대개혁으로 도입한 지급액 억제 장치 ‘거시경제 슬라이드’ 때문이다. 연금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이 장치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조정률을 반영, 지급액을 임금 또는 물가 상승분 이하로 낮춘다.

고갈 걱정 없는 일본 연금

지난해 물가와 임금을 반영한 기초 인상률은 3.1%, 여기에 조정률(0.4%)을 차감한 최종 인상률은 2.7%로 결정됐다. 임금이나 물가가 하락하면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작동하지 않고 그만큼 연금액이 삭감된다. 20년간 연금액이 오른 해는 다섯 번에 그쳤다.

이 제도는 일본의 연금이 100년 뒤에도 바닥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토대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보험료율. 일본은 2003년 13.58%였던 후생연금 보험료율을 2004년부터 매년 단계적으로 인상해 2017년 18.3%까지 올렸다. 2004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00년 안심’을 내걸고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다.

일본의 연금 개혁은 현재진행형이다. 5년에 한 번씩 재정 검증을 하고 경제·사회 변화에 맞춰 필요한 개혁을 또 실시한다. 5년 만에 재정 검증을 하는 올해는 기초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을 현행 40년(20~60세)에서 45년(20~65세)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증한다.지금 구조로는 기초연금 수급액이 2040년대 중반부터 30%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일본 정부는 판단했다. 후생연금을 합친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떨어진다. 이번 개혁은 보험료 납입 기간을 늘려 수급액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100년 뒤 재정 안정을 넘어 연금 보장성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도 추진

쉬운 일은 아니다. 기초연금은 재원의 절반을 국고로 부담하는 만큼 지급액을 늘리면 정부 부담이 커진다. 일본 국민들은 결국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 대대적인 연금 개혁에 따라 100년 뒤 재정 안정성을 확보한 만큼 한국과는 고민의 수준이 다르다.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30년 뒤 고갈된다. 당장 6년 뒤부터 그해 지급할 연금을 그해 거둔 보험료로 충당하지 못해 주식 등 기금 자산을 팔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21대 국회 임기 내 연금 개혁은 끝내 무산됐다. 26년 동안 9%로 동결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자고 합의하고도 또 다른 정치 셈법에 기회를 날렸다.

2004년 일본의 연금 개혁 이후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집권 자민당은 야당에 패배했다. 인기 없는 개혁의 대가다. 20년이 지난 지금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이후 일본의 역대 총리 중 호감도 1위로 꼽힌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후대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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