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중독' 日경제…급식서 소고기 빠지고, IT인재 연봉은 쥐꼬리

엔화 구매력 4년새 30% 하락

미국산 소고기값 1991년 후 최고
IT엔지니어 연봉, 美의 25% 수준
"엔저가 일본 가난하게 하고 있다"

日銀, 4월엔 '엔화 약세' 자극하다
기시다 총리 요구에 다시 말바꿔
일본 미야기현 도미야시에서 초·중·고생 5800명의 점심을 만드는 한 급식센터의 식단에서 최근 소고기가 사라졌다. 급격한 엔저에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1991년 수입 자유화 이후 최고치로 솟으면서 한 끼에 300~360엔(약 2600~3100원)의 예산으로는 소고기를 줄 수 없게 됐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는 일본 경제에 플러스’라는 디플레이션 시대의 속박이 서서히 일본을 가난하게 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엔·달러 환율은 연초 달러당 140엔 수준에서 출발했지만 지속적으로 상승(엔화 가치 하락)해 150엔대 중후반에 머물고 있다. 이날도 달러당 157엔 안팎에서 거래됐다.

엔저는 국력의 근간인 인재 확보나 과학기술 발전, 국방력 강화에도 타격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 말 기준 도쿄의 정보기술(IT)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달러로 환산했을 때 6만2530달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중국 베이징보다 30% 낮은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은 일본인은 1만4398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달러로 환산한 호주 최저임금이 일본의 두 배가 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도쿄공대가 가동한 최신 슈퍼컴퓨터도 하마터면 설치하지 못할 뻔했다. 해외에 지급해야 하는 연간 리스료가 당초 예상한 7억5000만엔에서 10억엔으로 30%가량 급등한 탓이다. 방위 분야에서는 올해 최신 스텔스 전투기 F-35A 구입 예산을 애초 대당 116억엔에서 140억엔으로 올려 잡아야 했다.모타니 고스케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사히신문에서 대규모 금융 완화 등을 실행한 ‘아베노믹스’에 대해 “일본 경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망국 정책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엔저로 국부가 계속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도 다급해졌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4월 엔화 약세를 자극하는 발언을 한 뒤 5월 들어 엔저에 경계감을 드러낸 것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우에다 총재는 4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는 엔화 약세가 기조적인 물가상승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말해 엔화 약세를 자극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우에다 총재는 기시다 총리의 요구를 전달받고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엔저와 관련해 “과거보다 환율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일본 경제는 더 이상 엔저에 의존할 단계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엔화 약세에도 수출 물량은 늘지 않고 무역적자가 굳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물가와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 지금 성장 모델을 다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 공장을 유치한 규슈처럼 새로운 산업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 =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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