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절반 떠나고 빈집 널렸다…서울 풍납동에 무슨 일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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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시계' 멈춘 풍납토성“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졌어요.” (풍납도깨비시장 청과물집 사장 A씨)
1997년, 아파트 짓다 백제유물 나와
풍납토성 인근 지역에도 건축 규제 적용
시의회, 상권 활성화 지원 위한 특별조례안 발의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도깨비시장에서 만난 40년 차 상인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1963년 문화재로 지정된 풍납토성은 1997년 백제시대 유물이 나온 이후 ‘정비사업 시계’가 멈춰 선 곳이다. 동네는 수십년 전 모습 그대로인데, 그 사이 국가유산청과 서울시로부터 보상받고 떠난 이들이 늘자 지역에는 공터와 빈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발 디딜 틈 없었던 풍납도깨비시장에도 손님 발 길이 뚝 끊겼다.
보존 外 구역 ‘건축 규제 완화’ 요구
4일 송파구청에 따르면 2001년 말 5만7182명이었던 풍납1동과 2동 주민등록인구는 올 4월 기준 3만5152명으로 절반가량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송파구 인구는 65만8242명에서 65만3447명으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국가유산청은 유적의 중요도에 따라 지역을 4개 권역으로 구분해 건축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당초 풍납토성 안 주민 모두를 이주시킨 뒤 발굴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2015년 핵심권역(2권역)만 이주 대상으로 삼는 기조로 전환했다. 백제문화층 유존 지역(3권역) 내 건물 개발을 7층 높이로 제한하고, 백제문화층 파괴지역(4권역)은 발굴조사 후 재건축을 검토키로 했다.문제는 지역에 남은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지역 상권은 물론 남은 주민들의 주거환경도 악화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주대책이 만족스럽지 않은데다 지역을 떠나라고 보상해주는 돈으로는 서울 어디서도 집을 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풍납동 주민들은 규제를 해제하고, 토성 성벽이 있지 않은 2권역 바깥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입장이다. 시장에서 7년째 정육점을 운영 중인 김송운 씨는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지어 유동 인구를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하지만 개발보다는 문화유산 보존에 우선순위를 둔 국가유산청은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市, 풍납동 ’관광특구‘ 조성 검토
주민과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와 송파구가 자체 조례를 개정하는 등 규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유산청의 반대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송파구는 지난해 3월 불합리한 규제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구의 청구 등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했다.풍납토성 보존 및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의 발굴조사는 최소 40년은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5년째 풍납동에서 사는 김동훈 씨(84)는 “나랏일이라고 주민들의 희생을 무조건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규제 완화 작업이 지지부진한 만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은 동네와 문화재가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 중이다. 우선 풍납동 일대를 관광특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서울관광재단이 관광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관련 용역의 과업지시서를 작성 중이며 이달께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김규남 시의원(국민의힘·송파)은 서울시가 인근 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특별회계로 마련하라는 조항을 담은 '서울특별시 풍납토성 인근 지역주민 지원 및 이주대책 마련에 관한 특별조례안'을 지난달 27일 발의했다.다만 서울시 문화본부 관계자는 “조례가 의결되면 다른 문화유산 보호관리구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앞으로 풍납토성과 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데 서울시와 협력해 재정적·행정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