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두 달 연속 2%대 둔화…유가·공공요금 '최대 변수' [통계 인사이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배가 진열돼 있다. 지난달 배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26.3% 올라,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5년 1월 이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로,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올 들어 지난 3월(3.1% 상승) 정점을 찍은 이후 두 달 연속 2%대 후반에서 안정되는 흐름을 보였다. 다만 배 가격이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채소·과일 물가 급등세는 이어졌다. 향후 유가 추이 및 공공요금 인상 여부가 2%대 물가 조기안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 1년 전 대비 두 배 올라


통계청이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2.7%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대(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둔화됐다.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들은 2%대 초반까지 상승 폭이 둔화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근원물가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오르면서 전달(2.2%)보다 0.2%포인트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2% 올랐다. 지난달(2.3%)보다 상승폭이 둔화됐다.

반면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을 중심으로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보다 3.1% 상승했다. 전월(3.5%)과 비교하면 상승 폭은 둔화했지만 여전히 3%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지수는 전월보다는 3.0% 하락했지만, 작년 동월 대비로는 17.3% 오르면서 급등세를 보였다. 상승 폭은 8개월째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특히 사과(80.4%)와 배(126.3%)를 중심으로 신선과실이 39.5% 상승하면서 4월(38.7%)에 이어 40%에 육박하는 급등세를 이어갔다. 작년 작황 부진에 따른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배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26.3%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5년 1월 이후로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최근 1년 새 배 값이 두 배 뛰었다는 뜻이다. 채소 가격도 불안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토마토와 양배추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7.8%, 56.1% 상승했다. 과일과 채소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19.0% 올랐다. 농산물은 전체 물가를 0.69%포인트 끌어올렸다. 농산물이 전체 물가 상승률(2.67%)의 4분의 1가량을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석유류 물가상승률은 3.1%로 나타나 전월(1.3%)보다 오름세가 확대됐다. 작년 1월 4.1%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이 반영되면서 국내 가격도 하락세로 전환됐지만 작년 기저효과로 인해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상승했다”고 밝혔다.

○“공공요금 인상폭 최소화해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지난 3월(3.1%)을 정점으로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추가 충격이 없다면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2% 초중반대로 안정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도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둔화를 감안하면 5월 이후에도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다만 최 부총리는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아져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느끼는 생활물가와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정부는 이달 종료 예정인 바나나 등 과일류 28종에 대한 할당관세를 하반기까지 연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양배추 등 채소류 4종에도 할당관세를 신규 적용·연장해 장바구니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연초에 적용했던 원당·계란가공품 등에 대한 할당관세를 하반기에도 유지하고, 오렌지·커피농축액 등을 추가해 총 19종의 식품원료에 대해 기업의 원가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공공요금과 유가 추이다. 전기·가스 요금은 그동안 계속된 동결 기조에 따라 적자가 누적되면서, 이르면 하반기에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 지하철 등 수도권 교통요금도 하반기 인상을 앞두고 있다. 최 부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회의에서 “공공요금은 민생과 직결된 만큼 요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다.전체 458개 품목 중 물가 가중치가 높은 석유류도 중동 분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오름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458개 품목 중 휘발유는 전세, 월세, 휴대전화료에 이어 네 번째로 가중치가 크다. 경유는 일곱 번째다. 유가에 연동되는 도시가스도 열두 번째다. 이 때문에 당초 이달 말 일몰이 예정된 유류세 인하 조치도 정부가 섣불리 연장 중단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