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 바흐, 드뷔시가?…아이돌 사관학교 SM이 클래식 레이블 만든 이유

요한킴, 피아노 신동의 클래식 데뷔
레드벨벳부터 샤이니까지, 클래식 변주
'리크리에이터블 콘텐츠'로 IP 활용 다변화

서울시향과 협업, K팝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
내년 상반기 K팝 오케스트라 라이브 공연 예고
여러 명의 젊은 가수들이 특정한 컨셉을 갖추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부르는 장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된 K팝은 아이돌 중심의 퍼포먼스 음악이다. 이런 K팝이 클래식, 재즈 등 다른 진지한 장르와 만난다면 어떨까.

SM엔터테인먼트는 몇년 전부터 산하의 클래식&재즈 레이블 'SM클래식스'를 통해 K팝과 타 장르의 융합을 시도해왔다. SM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을 클래식 버전으로 재창작한 이른바 '리크리에이터블' 콘텐츠를 제작하면서다. 최근에는 SM클래식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솔로 아티스트 요한킴의 데뷔 음원 발매를 앞두고 있다. 요한킴이 오는 7일 선보일 데뷔 음원 '허밍버드'는 벌새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 중심의 음악이다.
요한킴 데뷔 트레일러 캡쳐.
요한킴은 SBS 시사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서 피아노 신동으로 알려졌다. 그는 클래식 정통 연주자의 커리어를 밟는 대신 SM엔터에 합류해 'SM스테이션 프로젝트' 등을 작업하며 클래식과 대중음악 어디에도 국한되지 않은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이런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20년 7월 5인조 걸그룹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콜라보하면서다. 영화음악 감독이자 편곡가인 박인영은 빨간 맛의 통통 튀는 리듬을 관현악 합주로 재현했다. 이후 2022년에는 레드벨벳의 '필 마이 리듬' 오케스트라 버전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필 마이 리듬은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해서 만든 작품. 뮤직비디오에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조회수 355만회를 달성했다. 클래식 콘텐츠 중에서는 드문 일이다.

이외에도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을 드뷔시의 '달빛'과 융합해 웅장한 44인조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따듯한 위로를 전하는 가사의 뜻을 반영해 드뷔시의 달빛을 전주 부분에 포함했다. 포근한 달빛처럼 위로를 주는 음악이라는 취지를 살린 것. 이외에도 SM클래식스는 샤이니, 에스파, 강타, 태민, 웬디 등 SM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K팝을 오케스트라 버전 및 다양한 편성의 클래식 음악으로 편곡해 선보이고 있다. K팝 엔터사가 이같은 클래식 레이블을 만든 건 SM엔터가 처음이다. SM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대 음대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K팝을 다양한 버전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작곡가·편곡가들을 발굴하며 이런 리크리에이터블 콘텐츠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필 마이 리듬 오케스트라 버전 뮤비 캡쳐.
SM은 왜 리크리에이터블 콘텐츠 제작에 열심인걸까. SM측에 따르면 지식재산권(IP) 활용 다변화의 일환이다. 리크리에이터블 콘텐츠는 아이돌이 무대에 설 수 없지만, 라이브 공연이 필요할 때 유용하다. 실제로 K팝 클래식 음악은 공식 행사나 축제 등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필 마이 리듬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됐고, 소녀시대 '다시만난 세계' 오케스트라 버전은 작년 3월 서울시향의 강변음악회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클래식이 낯선 일반 시민들도 K팝의 익숙한 멜로디 덕분에 친숙하게 느껴지게끔 한다. SM엔터 관계자는 "IP를 활용해 K팝과 다른 장르를 융합해 팬들에게 신선함을 선물하고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열어주며 K팝 저변을 넓히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SM클래식스는 내년 상반기 그간 작업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K팝 오케스트라 라이브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영화음악,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곡으로 만든 라이브 콘서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K팝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비주얼, 퍼포먼스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되기 쉬운 K팝 음악의 청각적 부분까지 조명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비틀즈를 비롯해 서양 팝 음악들도 예전부터 이런 시도를 많이 해왔다"며 "클래식을 동시대의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동시대 음악을 수백년간 검증된 포맷에 의해 다시 재창조 한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