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를 81%로…감사원 "文정부 홍남기, 국가채무비율 축소·왜곡"
입력
수정
文정부 국가채무비율 왜곡 논란 일부 사실로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60년 예상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당초 153%에서 81.1%로 낮추도록 지시한 사실이 4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나라빚 규모의 전망치를 실제보다 절반가량 적어 보이게 왜곡했다는 얘기다. 홍 전 부총리는 이 과정에서 채무 비율의 추계 방식까지 바꾸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81.1%라더니 실제론 153%에 육박
홍남기, 국민 비판 우려에 전망치 축소 지시
수치 왜곡 위해 추산 전제·방법까지 바꿔
담당 국장은 부당한 지시 받고도 침묵
감사원 "재정전망 객관성·정부 신뢰 훼손"
文정부, ‘국가채무비율 전망치’ 절반으로 왜곡
감사원은 이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주요 재정관리제도 운영실태’ 주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홍 전 부총리 등 문재인 정부 경제관료들이 2020년 9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축소 왜곡한 것이 골자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재부 재정혁신국은 장기재정전망 발표를 두 달 앞둔 2020년 7월 7일 사전 시뮬레이션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11.6~168.2%에 이르는 것을 확인했다. 홍 전 부총리는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이튿날인 8일 청와대 정례보고에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00% 이상으로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고했다. 이후 재정혁신국은 같은달 16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3.0%(1안), 129.6%(2안)로 구성된 안을 홍 전 부총리에게 최종 보고했다.그러자 홍 전 부총리는 그 자리에서 “129%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자릿 수로 낮추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기재부는 같은해 9월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4~81% 수준으로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국가채무비율이 세 자릿수로 높게 발표될 경우 직면하게 될 국민 비판 등을 우려해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수치 왜곡 위해 추계방식까지 바꿔
홍 전 부총리는 수치를 낮추기 위해 추산 방식까지 변경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국가채무비율은 국가 부채를 명목 GDP로 나눠 계산한다. 국가 부채는 정부가 무조건 써야 하는 ‘의무 지출’과 정책에 따라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 지출’로 나뉜다. 국가채무비율은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한다’는 것을 핵심 전제로 두고 계산한다. 하지만 홍 전 부총리는 직원들에게 이러한 핵심 전제를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의 100%로 연동한다’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예컨대 경제성장률이 2%면 총지출(의무 지출+재량 지출) 증가율도 2%로 상한을 둔다는 의미다.이렇게 되면 매년 증가하는 의무 지출 특성상 재량 지출 증가폭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의무 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 보다 클 경우에는 재량 지출은 순감소 구간에 있는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2060년 GDP 대비 의무지출 비중은 21.6%로 경제성장률(2.0%)를 훌쩍 뛰어 넘는다.
당시 기재부 실무자들은 이러한 우려를 전했지만, 홍 전 부총리는 “왜 불가능한 일인가. 재량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정부가 충분히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뒤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국가채무비율을 계산할 때 총지출을 경제성장률로 제한한 사례는 주요 국가 중 단 한 곳도 없다”며 “변경된 전제는 현재 정부가 미래 정부가 쓸 지출을 제한한 것으로 재정전망의 원칙과 취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당시 기재부가 발표한 국가채무비율은 주요 정부 기관이 추산한 수치와도 차이가 컸다. 2020년 국회예산처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158.7%로 추산했다. 감사원도 이번 감사 과정에서 조세재정연구원과 다시 추산한 결과 148.2%로 도출됐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당시 장기재정전망 발표를 책임진 당시 나주범 재정혁신국장에 대해 “홍 전 부총리의 부당한 지시에 단 한 번도 반론이나 우려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나 국장에게 ‘주의요구’ 조치를 내렸다. 나 국장은 현재 교육부 차관보를 맡고 있다. 다만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 등 ‘윗선 개입’ 여부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강압이나 지시 등의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에 사건 송치하지 않은 것에는 “직권남용혐의 등을 검토했지만 범죄 구성 요건이 복잡해 혐의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