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붙었다고 상한가?…껍데기만 남은 펀드에 몰린 '불개미'

한국ANKOR유전, 동해 가스전과 관계 없지만 '급등'
청산 앞둔 펀드…"현재 가격 터무니 없어"
원유 수급 이슈 불거질 때 마다 변동성 큰 모습
사진과 기사 내용은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유국 기대감이 증시를 휩쓸고 있다. 석유와 가스, 나아가 에너지·시추 관련주가 모두 들썩이고 있다. 급등주 행렬에 이상한 종목이 눈에 띈다. 바로 한국ANKOR유전이다. 분배금 지급 후 청산을 앞둔 펀드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

4일 한국ANKOR유전은 전일 대비 133원(29.89%) 뛴 578원에 거래를 마쳤다. 471원에 거래를 시작한 한국ANKOR유전은 오전 9시18분께 상한가에 도달했다. 이후 530원대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결국 상한가 고지에 올랐다. 2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이다. 시가총액은 312억원에서 405억원으로 뛰었다. 전날엔 외국인이 81만6707주를 순매수했고, 이날은 개인이 78만5376주를 사들였다.동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부의 발표가 주가에 불을 붙였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물리탐사 자료 해석을 통해 산출한 '탐사자원량'은 최소 35억배럴, 최대 140억배럴이다. 탐사자원량은 추정 매장량으로 아직 시추를 통해 확인된 수치는 아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0억 배럴을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450조원 수준인데 동해 석유와 가스 매장의 가치가 2000조원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한국ANKOR유전이 동해 가스·유전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ANKOR유전의 '유전'은 미국 앵커유전을 뜻한다. 한국ANKOR유전은 미국 멕시코만 원유 개발로 얻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펀드다.한국ANKOR유전은 2011년 설정됐다. 미국 앵커유전의 수익성이 낮아지자 한국석유공사,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당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22년 앵커유전 지분 80%를 4700만달러(약 637억원)에 처분했다.

이로써 한국ANKOR유전은 껍데기만 남았다. 또 지난해 2분기 배당을 마무리해 현재 배당할 수 있는 현금도 없는 상태다. 한국리얼에셋운용은 최근 자산운용보고서에서 "이 펀드가 추가 금액을 회수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펀드 만기 이전에 배당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은 보험금을 지급한 한국무역보험공사에 귀속될 예정"이라고 했다.

적정 가격을 판가름할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없는 상황에 한국ANKOR유전은 단타 놀이터로 전락한 모습이다. 원유 수급 리스크가 불거지면 매수세가 집중되는 식이다. 최근 2거래일 일일 평균 거래량은 약 1억650만주로 지난달 31일(71만5601주) 대비 약 150배 급증했다. 작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불거졌을 때도 세 차례 상한가를 기록했다.현재 가격(578원)은 터무니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한국ANKOR유전의 자산 매각은 끝났고, 투자목적회사(SPC)를 청산하는 과정"이라며 "SPC 정리가 완료되면 상장 폐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상장 폐지할 때 청산 분배금은 지급될 수 있다"면서도 "청산 분배금은 좌당 100원 미만으로 예상돼 현재 한국ANKOR유전 가격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