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엘살바도르 통화로 바꾼 경제학자의 급진적 주장 [서평]

더 피아트 스탠다드

사이페딘 아모스 지음
임경은 옮김/다산북스
512쪽|3만8000원
Getty Images Bank
2021년 중앙아메리카 국가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했다. <더 피아트 스탠다드>는 엘살바도르 경제 고문을 맡고 있는 사이페딘 아모스 레바논아메리칸대 경제학 교수의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 법정 화폐가 우리 사회와 경제에 무지막지한 피해를 주었다고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비트코인을 쓸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현행 화폐 시스템이 아무런 합의도 없이 섣부른 판단에 의해 인류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말한다. “피아트 스탠다드, 즉 법화 본위제는 엔지니어 한 명이 설계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그보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중앙은행들이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60년간 정치와 화폐가 결합해 온 끝에 불가피하게 나타난 지정학적 결과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한 통화 공급에 의한 인플레이션이다. 비트코인은 전체 공급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 있지만, 법정 화폐는 이런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채굴 난이도를 통해 공급 속도를 조절하는데, 법정 화폐는 이런 통제 장치가 없다고 지적한다.

금본위제일 때만 해도 화폐 가치는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됐다. 지금은 아니다. 화폐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하락한다. 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을 바꾼다. 현금을 들고 있으면 손해기 때문에 투자나 투기를 부추기고, 이에 대응해 복잡한 금융상품이 만들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책은 더 나간다. 새로 짓는 건물의 내구도가 점점 낮아지고, 건강에 안 좋은 가공식품 소비가 늘어나고, 환경 문제 등 공포를 조장하는 과학 연구가 늘어나는 것 등이 모두 법정 화폐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폐 가치 하락을 반영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할인율을 높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이 싼 물건을 더 많이 찾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미래를 낙관한다. 비트코인이란 법정 화폐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매우 높은 확률로,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의 처참한 붕괴를 일으키지 않고도 질서 있고 차분하게 모든 경제 시스템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

책은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법정 화폐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문제를 법정 화폐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비트코인 역시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런데도 책은 비트코인이 가진 문제는 무시한 채 가능성만을 얘기한다. 철저하게 비트코인 옹호론자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