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레드·멘델스존의 옐로...음악을 사랑한 김기린의 미공개 단색화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김기린, 안과 밖, 1986.
글자 하나 없이 시를 쓸 수 있을까. 시만이 가진 운율과 리듬, 수많은 비유법을 단 한 개의 단어도 사용하지 않은 채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매마른 사막에 나무를 심듯 불가능해 보이는 이 예술적 도전을 한평생 지속해 온 작가가 있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단색화의 선구자'로 세상에 잘 알려진 작가 김기린이다.

그는 광활한 캔버스에 오돌토돌한 계란형의 점을 반복해 찍는 작업을 일평생 해 온 작가다. 그는 우선 큰 붓으로 물감을 캔버스 전체에 여러 겹 쌓는다. 다음으로는 중간 크기의 붓을 들어 굵은 그리드 선을 새겨 넣는다. 작은 붓을 든 김기린은 그리드 안에 또 다른 얇은 선을 긋는다. 이러한 '바탕 작업'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그는 점을 찍는다.캔버스를 올려놓기 위해 테이블 세 개를 꺼내 붙인 김기린은 캔버스의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점을 하나씩 찍어 나간다. 한 번 찍은 뒤 모두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점 위에 다시 점을 찍는다. 한 개의 점 위엔 30겹의 물감이 쌓인다. 같은 작업을 30번이나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행을 고집하기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1년, 오래는 3년 이상이 걸린다. 김기린에게 이 점찍기 작업은 정신 수양과도 같다. 점을 겹겹이 쌓을 때의 시간과 온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물감을 쓴다 하더라도 그 밀도와 농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시의 운율처럼 캔버스 위에 리듬감을 수놓았다.
작가 김기린.
지금,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에서는 한 명의 단색화 거장이 걸어 온 생애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2021년 그가 작고한 후 열리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김기린이라는 작가를 단순 '단색조 화가'가 아니라 화면에 그림으로 '시'를 쓰는 작가로 풀어냈다.김기린은 일제강점기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는 관련 서적을 쌓아두고 찾는 손님에게 철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그림 속 개념적 아이디어도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철학적 지식에서 나왔다.

전쟁 직전, 그는 서울로 내려와 고교시절을 보냈다. 용산고등학교에서 만난 프랑스어 선생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수업 내내 프랑스 시를 읽어주던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그는 문학에 깊게 빠졌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한 것도 오로지 시와 문학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전시 전경.
대학생 김기린은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작품을 집착할 정도로 사랑했다. 그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한국인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프랑스에 떨어진 김기린은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터무니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로 하고픈 말을 전하기엔 언어는 너무 어려웠다. 그런 김기린에게 말 없이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림이었다. 미술사와 미술 수업을 청강하며 붓을 들었다. 1965년, 파리에서 새내기 작가 김기린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당시 그가 내놓은 그림은 지금의 김기린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르다. 추상 대신 물체와 사물을 명확히 그리는 구상화를 전시했다. 인생 첫 번째 전시장에서 김기린은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스승과 조우한다. 바로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교수 로저 카스텔이다. 그는 김기린에게 "지금까지 배운 것을 다 버리고 나에게 오라"며 추상화의 세계로 그를 끌어들였다. '단색화 거장'의 첫 걸음이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전시 전경.
1972년에 열린 파리 개인전에 나온 검은 바탕에 검은 직사각형을 그려놓은 1970년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은 세상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그림은 오늘날 ‘단색화’라고 불리는 작품이 됐다. 국내에서 김기린을 알아보기 전 해외에서 그에게 먼저 눈길을 돌렸다. 박서보 등과 함께 단색조 운동에 불을 지핀 작가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이 연작을 만날 수 있다.

김기린은 전업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동시대 단색화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회화를 배우고 평생 회화만 그린 작가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복원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그림은 하는 것이지 그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에게 그림이란 먼 타국에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시를 쓰는 행위였다. 이방인이라는 스스로의 존재 의식을 회화로 풀어낸 것이다. 당연히 시장이나 세상 평판에도 관심이 없었다.시간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은 보는 각도나 조명에 따라 그 느낌이 완벽히 달라진다. 마치 캔버스 위에 점으로 찍어놓은 비밀 코드나 모스 부호 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는 그림을 보는 관객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에 초대한다. 작은 점을 보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고, 큰 그림을 보려면 몇 발자국 떨어져 멀리 바라봐야 하는 등 관객은 끝없이 움직여야 작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절대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안과 밖' 연작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지와 같은 종이에 유화로 점을 찍어낸 시리즈다. 그가 긴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서울 효자동에 작업실을 차리며 그린 그림들이다. 작고한 이후 그의 작업실을 정리하다 나온 작업들이기 떄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는 그림들이다.

그가 한지를 택한 이유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그리워하던 것이 고향 문 창호지에 빛이 비치는 장면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한지를 집어들어 종이회화 작업을 펼쳤다. 빛의 투명함과 빛에 따라 늘 바뀌는 색을 회화로 표현했다. 이 작업들이야말로 사진으로는 그 본질을 볼 수 없다. 빛이 비추는 실제 공간에서 비로소 그 존재 가치가 드러나는 작품이기 떄문이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기린 개인전 '무언의 영역' 전시 전경.
1970년대 김기린의 작품 활동과, 시인이 되기 위해 프랑스에서 고군분투하던 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도 함께 관객을 만난다. 그가 원고지에 뺴곡하게 쓴 글이나, 본명인 '김정환'으로 시를 신문에 출품한 기록, 그리고 불어 단어를 공부하던 노트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김기린은 클래식 애호가로도 유명했다. 긴 작업 내내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멘델스존의 곡에는 노랑색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서는 회색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색 중 하나인 붉은 색의 영감은 그가 제일 사랑하던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담긴 LP 커버에서 나왔다. 그의 곁에는 항상 색과 글,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2012년 그는 “찍는 순간마다 점이 다 다르다. 그게 내 그림의 생명력이다”라며 “점을 찍는 순간만큼은 나는 내 한계를 넘어선다.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제일 충만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예술의 삶 그 자체를 살아 온 그의 전시는 7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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