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대기자만 2000명'…어르신들 홀린 건물의 정체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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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콘텐츠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엄마, 아빠 보러 출퇴근길에 많이 오세요. 은퇴하고 매일 오시는 분도 계시고요."
"강남 고급주택 아니었어?"
우면산 자락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알츠하이머·파킨슨병 환자 전문
입주자 2명당 보호사 1명 '맞춤 케어'
서초역·양재역까지 차로 15분 거리
보호자 앱으로 건강상태 24시간 확인
지난 3일 찾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형촌마을. 녹음이 짙은 우면산 자락이다. 4층짜리 아파트가 숲 사이로 자리를 잡고 있다. 파스텔톤의 베이지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외관을 갖추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단독주택가로 들어서는 초입. 지나칠 뻔했던 자리에 KB골든라이프케어의 노인요양시설 '서초빌리지'가 들어서 있다. 건물 외관을 일부러 인근 아파트인 네이처힐이나 고급 단독주택과 맞췄다고 한다.찾은 시간대가 오후 3시께인데 연신 승용차가 들어왔다. 서초빌리지는 요양원 가운데 드물게 도심과 가깝다.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3호선 양재역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정원은 80명으로 많지 않다. 이곳을 찾는 가족은 항상 많아 주차장이 붐빈다. 평생 가족과 도시에서 산 어르신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성은 KB골든라이프케어 운영관리본부 팀장은 "강남에 거주하는 자녀 위주로 매일 찾는 분도 있고, 평균적으로 월 5회는 방문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초빌리지는 입주자는 모두 알츠하이머병 혹은 파킨슨병 환자다. 평균 나이는 85세다. 이들은 24시간 관리가 필요한 후기고령자로 분류된다. 이상욱 사업개발본부장은 "지병이 있는 어르신은 원래 다니던 종합병원 근처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도심 근처에 있는 요양원이 인기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원래 살던 집 그대로
지방의 요양원과 다른 것은 정말로 '집 같다'는 점이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서면 벽 한쪽에 방문객이 어르신 주거 공간의 공기 질을 체크할 수 있는 모니터가 보인다. 온도는 23.5도, 미세먼지 농도는 PM-2.5 기준 5㎛로 '좋음' 수준이다.2·3층 주거 공간으로 올라가니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거실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르신 세 분은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직원이 언급하고서야 깨달은 건 병원 같은 복도식 구조가 아니라 거실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여러 방 가운데 거실이 있는 구조다. 방이 모두 열려 있어서 거실에 상주하는 요양보호사가 어르신들의 일상을 체크할 수 있다.거실이 있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어르신이 어두운 방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다. 낮 활동 시간대에는 거실로 나와 활동한다는 얘기다. 거실에 있는 요양보호사들은 24시간 관리가 쉽고, 어르신은 교류를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곳에 입주한 어르신은 대부분 표정이 밝았다.밥통과 국통이 거실에 놓여있는 게 눈에 띄었다. 냄새도 은근히 스며 나왔다. 어르신들의 식욕을 돋우기 위한 배려다. 하루 세 끼 식사도 방이 아니라 거실에서 먹는다. 죽이나 미음은 지하 2층에서 식단 관리기업인 아워홈이 만든다.4인실이 아니라 1~2인실 위주로만 구성됐다는 것도 일반 요양원과 다른 점이다. 자력으로 속옷을 갈아입거나 목욕하기 어려운 후기고령자는 사생활을 더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4인실에선 프라이버시뿐 아니라 개인 시간이나 가족과의 면담도 보장받기 어렵다. 1~2인실에 대한 요구가 많은 이유다. 요양원 관계자는 "한국의 장기요양등급 제도와 보험금 지급 기준은 모두 4인실에 맞춰져 있어 1~2인실 크기 요양원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1인실은 전용 16.5㎡, 2인실은 23.1㎡ 크기다. 본인의 물건을 가지고 와 본인이 살았던 공간을 그대로 구현하기에 적당한 넓이다. 한 1인실에선 흥겨운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안에선 침대에 누운 어르신이 리듬에 맞춰 발을 끄덕이는 게 보였다. 개인 공간이 생기자 어르신의 삶의 질도 올라간 것이다.
방 곳곳에는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어르신을 위한 배려가 녹아 있다. 방 손잡이는 색깔이 모두 달랐다. 글자를 읽기 어려운 어르신들도 색은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방에는 큰 창을 배치해 햇살이 들어오도록 했다. 서초빌리지의 한쪽은 우면산, 다른 쪽은 청계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초빌리지 근무자는 "낮에도 커튼을 치고 어두운 데 계시려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햇살과 녹지를 보실 수 있도록 낮 시간대엔 항상 커튼을 젖혀 놓고 있다"고 말했다. 바닥에는 문턱이 없는 배리어프리 설계, 문에는 손가락 끼임 방지 기능이 적용됐다.
대기자 2000명 … 3곳 더 짓는다
"이ㅁㅁ 어르신 나오셨나요. 여기 계시군요." 지하 1층에선 '퀴즈 골든벨'이 한창이었다. 어르신 2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퀴즈는 '오늘 날짜 맞혀보기'부터 시작됐다. 어르신들이 퀴즈를 맞히기 위해 차례로 손을 들었다. 서초빌리지에선 주 11회(매회 40분) 여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물리치료실은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물리치료실에 그려진 트랙을 따라 돈다. 창가에 있는 5개 사이클은 '완전가동' 중이었다. 3~4명의 물리치료사가 붙어 다리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물리치료사를 포함해 서초빌리지에 상주하는 인력은 모두 공개채용으로 뽑았다. 총 69명 중 45명이 요양보호사, 6명이 간호사다. 물리치료사(3명)와 사회복지(3명)도 상주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협약을 맺은 의사가 방문해 어르신의 건강을 체크한다. 요양보호사가 3교대로 24시간 거실에 상주한다. 야간마다 돌면서 어르신의 건강을 확인한다. 약은 모두 간호사가 관리하고 먹기 전날 약을 갖춰놓는다. 복용은 요양보호사가 챙긴다. 조성은 팀장은 "모든 서비스가 결합한 '집'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어르신의 건강은 보호자 앱을 통해 항상 확인할 수 있다. 혈압과 체중, 체온, 혈당, 맥박 등이 공유된다. 어느 프로그램을 이용했는지, 물리치료는 뭘 받았는지도 보호자에게 알려준다. 다양한 사진을 매달 앱으로 보내고, 동영상도 원하면 카카오톡으로 전송한다.
서초빌리지는 입주를 희망하는 대기자가 2000여 명에 달한다. 1인실이 월 320만원, 2인실 220만원으로 노인장기요양급여의 20%(본인부담금)에 식대와 침실료를 합한 금액이다. 지방 요양원에 비하면 비싸지만 도심 근처에 서비스를 고려하면 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본인이 원래 살던 아파트를 월세로 내주고 입주해 부담을 던 어르신이 대부분이라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가 액티브 시니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평창 카운티 입주자는 일반 입주자와 별도로 대기자를 받는다.KB골든라이프케어는 1·2호 요양원인 위례·서초 빌리지에 이어 은평·광교·강동빌리지를 새로 짓고 있다. 이상욱 본부장은 "실버타운의 경우 자기 아파트라는 대체재가 있지만 요양원에 가야 할 상황이면 집에서 모시기 어렵기 때문에 수요의 강도는 더 높다"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