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규제에 막혀…풍납동 인구 반토막

27년째 재건축 올스톱

1997년 정비사업 도중 유물 발견
보존지역 주민만 보상주고 이주
개발제한에 인근 지역까지 슬럼화

지역상권 소상공인 매출 악영향
市 "관광특구 지정 등 해법 모색"
폐허로 가득한 서울 송파구 풍납1·2동. 지난 1일 방문한 이곳에선 1997년 백제시대 왕궁 터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돼 재건축 등 각종 공사가 멈춰섰다. 최해련 기자
“전성기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졌어요.”(풍납도깨비시장 청과물집 사장 A씨)

4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도깨비시장에서 만난 40년 차 상인은 급감한 매출에 울상을 지었다. 1963년 문화재로 지정된 풍납토성 안에 있는 풍납도깨비시장 일대의 정비사업 시계는 1997년 백제시대 유물이 나온 뒤 멈춰 서 있다. 그사이 국가유산청과 서울시의 보상을 받고 떠나는 이가 늘면서 공터와 빈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풍납동에서 55년째 거주 중인 주민 김동훈 씨(84)는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함께 개발되기 시작한 잠실처럼 이곳도 새 건물이 들어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존 외 구역 ‘건축 규제 완화’ 요구

송파구청에 따르면 2001년 5만7182명이던 풍납1·2동 주민등록인구는 올해 4월 기준 3만5152명으로 절반가량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송파구 인구는 65만8242명에서 65만3447명으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국가유산청은 유적 중요도에 따라 지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건축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애초 풍납토성 안 주민을 모두 이주시킨 뒤 발굴 조사를 할 계획이었지만 2015년 핵심권역(2권역)만 이주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백제문화층 유존 지역(3권역) 내 건물 개발을 7층 높이로 제한하고, 백제문화층 파괴 지역(4권역)은 발굴 조사 후 재건축을 검토하기로 했다.문제는 지역에 남은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지역 상권은 물론 남은 주민의 주거 환경도 악화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주 대책이 만족스럽지 않은 데다 지역을 떠나라고 보상해주는 돈으로는 서울 어디에서도 집을 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풍납동 주민은 규제를 해제하고, 토성 성벽이 없는 2권역 바깥의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입장이다. 시장에서 7년째 정육점을 운영 중인 김송운 씨는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지어 유동 인구를 끌어 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발보다 문화유산 보존에 우선순위를 둔 국가유산청은 주민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市, 풍납동 ’관광특구‘ 조성 검토

주민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 송파구가 나서서 규제 완화를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송파구는 지난해 3월 불합리한 규제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했다.풍납토성 보존 및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구역의 발굴 조사는 최소 4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규제 완화 작업이 지지부진한 만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은 해법을 모색 중이다. 우선 풍납동 일대를 관광특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서울관광재단이 관광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관련 용역의 과업지시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이달께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김규남 시의원(국민의힘·송파)은 서울시가 인근 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특별회계로 마련하라는 특별조례안을 지난달 27일 발의했다.

다만 서울시 문화본부 관계자는 “조례가 의결되면 다른 문화유산 보호관리구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앞으로 풍납토성과 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서울시와 협력해 재정적, 행정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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