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환불 불가 여행상품의 덫

김형배 더킴로펌 공정거래그룹 고문
7~8월은 여행지가 가장 붐비는 시기다. 고물가와 고이자로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서민들은 한 푼이 아깝다. 비싼 해외 항공요금과 숙박비라면 더 아껴야 한다. 비행기와 숙박 예약을 마친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으로 할까 저것으로 할까 한참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장 저렴한 환불 불가(non-refundable) 상품이 눈에 확 띄는 이유다. 비용을 줄이려고 환불 불가 상품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봤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필자의 경험이다. 미국에 거주할 때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E를 통해 환불 불가 항공권을 예약하고 결제했다. 출장 일정이 바뀌어 예약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변경 수수료가 구매한 항공권 가격의 반 정도나 돼 여행사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약관에 고지돼 있으므로 절대 깎아 줄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어 항공사에 직접 전화했더니 수수료 없이 예약 일자를 변경해줬다.작년 이맘때 온라인 여행사 A를 통해 해외 숙소를 환불 불가 상품으로 예약·결제했는데, 이후 위치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숙소 몇 개를 찾아내서 기존 예약을 결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했다. 그랬더니 한 푼도 환불해 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메일로 와서 당황했다. A 여행사에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하니 사전에 고지했으므로 전액을 돌려줄 수 없다는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결제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취소했는데 말이 되냐고 따져도 보고 딱한 사정을 읍소도 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몇 차례 더 전화하고 이메일도 보냈으나 호텔과 협의해 알려주겠다고만 한 뒤 연락이 없었다. 목마른 자 우물 파라 했던가. 답답해 호텔로 직접 메일을 보내고 전화했더니 수수료 없이 취소한 예약을 복원해 주겠다고 해 받아들였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 이유는 환불 불가 상품은 대다수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취소·변경 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손해를 본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한국소비자원이 조정하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선다. 일부 소비자가 피해를 봤다고 환불 불가 상품 판매를 금지하면 소수 소비자의 피해는 예방할 수 있으나 저렴한 상품 구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대다수 소비자의 혜택을 빼앗게 된다.

정부가 할 일은 환불 불가 상품의 취소·변경 시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고, 취소·변경 시 부담해야 할 수수료 규정이 눈에 잘 띄도록 사업자가 공지하게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무턱대고 환불 불가 상품을 구매하지 말고 자신의 여행 일정과 비용을 꼼꼼히 따져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