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른 기업…영구채 발행 '역대급 러시'

비금융기업 발행액 올해 1.8조
이미 작년 초과…역대 최대 전망
"본질적 재무 개선책 아냐" 비판도
▶마켓인사이트 6월 4일 오후 3시 53분

신세계건설, JTBC, SK온 등 비금융기업이 줄줄이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에 나섰다. 자본으로 인정되는 영구채를 발행해 부채비율을 떨어뜨리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금융회사가 주로 발행해 온 영구채가 일반기업의 새 자본 확충 통로가 되고 있지만 콜옵션 등을 고려하면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비금융기업의 영구채 발행액은 1조834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발행액(1조5220억원)을 벌써 넘어섰다. 비금융기업의 발행이 이어지면서 올해 연간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던 2013년(2조38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구채는 만기가 통상 30년인 채권으로, 발행액만큼을 자본으로 회계 처리한다. 과거에는 자본 건전성 지표를 개선하려는 금융회사가 주로 발행했다. 올 들어서는 재무구조가 악화한 비금융기업의 발행액이 크게 늘고 있다.

JTBC는 지난달 31일에 계열사인 다보중앙을 대상으로 사모 영구채 540억원어치를 연 9.3% 금리로 발행했다. 발행 2년 뒤 영구채를 조기상환(콜옵션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3.0%포인트 올라가는 ‘스텝업’(금리 상향 조정) 조항도 담겼다. 지난해 말 기준 JTBC의 부채비율은 999% 수준이다. 이 회사는 계열사를 대상으로 영구채를 발행하면서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자본 확충이 시급한 건설사들도 영구채 조달에 나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직격탄을 맞은 신세계건설은 지난달 29일 사모 영구채 6500억원어치를 연 7% 금리로 발행했다. 비금융기업 영구채 발행액으로는 역대 최대다. 종전 최대치는 2019년 SK인천석유화학이 발행한 6000억원이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800%대에 달한 신세계건설의 부채비율은 이번 영구채 발행으로 20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대규모 투자로 재무구조가 나빠진 SK온도 영구채를 서둘러 찍기로 했다. 3000억원 이상을 이르면 올 상반기 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자본 확충이 시급한 회사들이 잇달아 영구채를 발행할 계획이어서 올해 비금융기업 발행액은 3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영구채 발행이 본질적 재무구조 개선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만기는 길지만 3~5년 뒤 콜옵션을 행사하는 게 관행처럼 굳었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 채권발행 담당자는 “유상증자나 자산 매각과 비교해 영구채 발행은 쉬운 자금 조달 방법”이라면서도 “3~5년 후 상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 봉합책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