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집 누나에서 폼 미친 도시녀까지...흥행 작두를 타버린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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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 김선영배우 김선영을 두고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씬 스틸러 배우라는 소리를 한다. 잘못됐다. 그녀는 진정으로 주연과 조연을, 참으로 잘 가려서 하는 배우다. 주연이어도 맞지 않으면 안 하고 조연도 맞는 것,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해낸다. 김선영은 그런 배우이다.내가 좋아하는 김선영의 연기는 양면이다. 그녀는 ‘미쓰백’같은 영화에서 주인공 형사 장섭(이희준)의 억척이 누나 역으로 나온다. 극 중 이름도 없다. 그냥 누나다. 이 누나는 국밥집을 하며 혼자 사는데 맛집이어서 장사가 잘되고 오래된 집이다. 여자는 그저 "동생~동생~"하며 산다. 내 동생이 잘생겼고, 얘가 잘나가는 형사고, 어쩌고 떠든다. 사람들이 늘 듣던 얘기라는 듯, ‘안물안궁’이라는 듯 고개를 처박고 국밥을 먹고 있으면 정작 동생은 누나의 그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수다를 견딜 수 없어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무슨 사연인지 누나는 그저 동생밖에 없어 하고, 동생이 잘못해도 정작 동생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식의 막무가내 엄마 같은 누나인데,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 장섭은 탈 많고 사연 많고, 사건을 끼고 살 수밖에 없는 미쓰백(한지민)에게로 옮아간다. 누나가 없었으면 주인공 장섭의, 미쓰백에 대한 ‘끝없는 순수와 사랑’의 행동 동기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김선영이 맡는 역할은 그래서 없어선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김선영은 그런 배우이다.내가 좋아하는 김선영의 또 다른 연기는 ‘내가 죽던 날’에서의 주인공 여자 형사반장 현수(김혜수)의 친구 민정 역으로 나올 때이다. 민정은 현수의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현수를 진정으로 걱정하며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잔소리도 좀 하는 친구이다. 김선영은 이 영화에서 댄디한 도시 여자로 나온다. 김선영은 투피스 정장 바지 스타일의 오피스 걸 룩도 잘 어울리는데 그건 그녀의 키가 167cm여서 다리가 길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잘 찾아서 한다
김선영이 주연·조연을 가리지 않아?
아무 것도 모르는 소리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이상하게도 흥행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건 영화가 어두웠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고, 억누른 슬픔이 있으며, 강요된 헤어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수는 남편(김태훈)과 이혼소송 중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김선영은, 아 이 여배우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김선영의 양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조지 쿠커 감독(맞다. 로버트 테일러,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춘희, 1934’와 샤를 보와이에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가스등, 1944’을 만든 그 감독. 백만 년 전 공룡 시대 때의 그 감독이다.)의 전설적이면서도, 아련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의 일라이저(오드리 헵번) 같은 느낌을 들게 된다.
원래는 투박하고 무지렁이 같은 느낌마저 들었던 여자가 (김선영은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출신이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교육을 받고, 도시 美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김선영은 춘천 명문대인 한림대를 다녔다.) 스스로를 조탁하여 세련되어지고 결국 단아한 여인으로 변신한 케이스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고 언제라도 여지없이 자신의 출신과 자신의 ‘악다구니’를 꺼내 들 수 있는 여자라는 얘기다. 낮과 밤이 다른 여자. 야성과 지성을 오가는 여자. 이런 여자, 은근히 매력이 있다. 김선영은 그런 배우이다.다시 꺼내 보고 싶지는 않은 얄팍한 상업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 김선영은 구멍가게 아줌마로 나와서는 '부산에 와서 해태 껌을 달라는 대식(박철민)'과 한 판 말싸움을 벌이는 ‘갱상도’ 여자로 나온다. “우리는 뭐 해태껌 이른 거 취급을 안하지예. 롯데 이른 거 딱 갖다 놓지 우리는!”이라며 대식의 염장을 지른다. 빗질 안한 짧은 머리에 핀을 꽂고 삐딱하게 앉아 올려 보는 구멍가게 아줌마의 캐릭터를 김선영만큼 해낼 수 있는 여배우는, 내가 아는 한, 한국에 없다. 지구상에도 없다.오죽했으면 대식이 그런 김선영의 등 뒤에 대고 요런 "닝게르 개호로 조까라마이싱 니주가리 씨빠빠 상놈의 십탱구리 여인! 이거 분노해 말아!”라고 쌍욕의 절규를 내지를 정도이다. 영화는 형편없지만(지역감정을 소재로 이용해 양쪽 다 하향평준화 시켰다.) 이 대목에서만큼은 극장에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2011년 영화였고 그때부터 영화판에서는 저 여자 누구야?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후 김선영은 작두를 탄다.김선영이 먼저 탄 작두는 영화 쪽이 아니라 TV 드라마 쪽이었다. ‘응답하라 1988’(2016), ‘동백꽃 필 무렵’(2019), ‘사랑의 불시착’(2020) 그리고 ‘일타 스캔들’(2020) 같은 작품이다. 모두 조연이었고 감초 역할이었지만 늘 두드러졌다. 이들 드라마는 대형 히트를 쳤다. 김선영은 작품 운이 잘 따랐던 것이 아니라 김선영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작품과 같이 자신도 주목을 받아 떴다. 그녀는 이제 어디서든 쓰일 수 있는 배우였고 어디든 없어서는 안 되는 배우가 됐다. 모든 연기자의 로망은 최고의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 남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다. 여자 이순재나 여자 신구가 되는 것. 그건 김선영에겐 어쩌면 떼어 놓은 당상과 같은 일이다. 김선영은 그런 배우이다.김선영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이기 시작한 것이 모두 남편인 이승원 감독의 영화가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녀는 이승원과 영화를 세 편을 했는데 ‘소통과 거짓말’ ‘해피 뻐스데이’ 그리고 ‘세 자매’이다. 앞의 것은 독립영화였고 뒤의 것은 상업영화다. 감독인 남편과 작업을 같이 하는 여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승원과 김선영을 보고 있으면 팀 버튼과 헬레나 본 햄 카터 커플이 생각난다. 물론 이제는 헤어졌지만. (팀 버튼은 요즘 모니카 벨루치와 산다. OMG). 팀-헬레나 조는 영화적 동지애가 돋보였던 커플이었다. 김선영에게서는 헬레나 본 햄 카터 같은 느낌이 난다. 김선영은 그런 배우이다.김선영은 '여자 권해효'이다. 이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 그러나 아무도 그의 일에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지 못하는 사람. 연예인으로서 간섭받기보다는 연기자로서 대우받고 추앙받는 사람. 김선영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2023년 주연작 ‘드림 팰리스’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로는 대종상 조연상을 탔다. 그녀가 무당 화림(김고은)의 선배 언니 오강심 역으로 나온 ‘파묘’는 1200만이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그녀가 출연하면 영화든 드라마든 비평과 흥행에서 터진다. 그래서 김선영이 나와야 한다. 이런 사람들 두고 흔히들 ‘대세 배우’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김선영은 진정 그런 배우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