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에 모습 드러낸 임윤찬이 즉석에서 연주한 어떤 곡

[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중 6월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최근에 JTBC의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의 토크쇼에 출연하였습니다. 그 때 즉석에서 요청을 받고 연주한 곡 가운데 하나가 차이코프스키의 <사계(The Seasons)> 가운데 6월이었는데, 임윤찬의 연주는 아직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신중한 어프로치와 특히 왼손 피아노가 드러내는 과감한 내성부 표현 등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임윤찬]
차이코프스키의 <사계(The Seasons)>는 1년 동안 매달 특정 시인의 시와 함께 그에 적절한 음악을 소개하는 음악잡지 '누벨리스트'의 프로젝트를 위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2개의 피아노곡들을 모은 작품입니다. 12개의 곡들이 모두 주옥같이 아름답지만 그 중 '6월'은 12개의 곡 가운데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의 하나입니다.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멜랑코리한 선율이 너무나 매력적인 이 ‘6월’은 아래의 알렉세이 플레셰예프의 시를 바카롤(뱃노래) 형식에 따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로 인해 흔히 '차이코프스키의 바카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 바닷가로 가자
거기 파도들이 우리 발에 키스를 한다
신비로운 슬픔을 머금고
별빛이 우리 위로 쏟아진다-알렉세이 플레셰예프

일반적으로 바카롤은 6/8박자로 진행되지만 이 곡은 4/4박자인 것이 좀 특이한데, 전체적으로는 <A - B - A' - 코다>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손 피아노가 마치 바닷가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또는 조용히 노를 젓는 듯한) 아티큘레이션(4분음-4분음-2분음)에 의한 3박자의 상승 음형을 노래하는 가운데(아래 악보의 1, 2마디 부분) 오른손 피아노가 멜랑코리한 상행 음형의 핵심 주제를 노래하며 곡은 시작됩니다. 이 상행하는 이 음형(아래 빨간색 부분)은 (뭔가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동경이 느껴지는데, 곧 (물위에 떠서 부유하는 듯한 리듬의) 3음 단위 음형(아래 파란색 부분)이 왼손 피아노와 서로 2중주처럼 대화하듯 아래로 내려올 때는 체념과도 같은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특이한 것은 이처럼 주제 선율이 상행과 하행을 거듭할 때 수시로 아르페지오가 마치 발에 찰랑이는 파도 또는 배에 부딪히는 물결과도 같이 표현됩니다(위 악보의 형광색 표시 부분).[악보 (아르페지오)]


이러한 아르페지오는 마치 물위에 떠서 조용히 흔들리는 듯한 바카롤(뱃노래)의 분위기 표현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피아니스트에 따라서는 표현이 크게 갈립니다. 예를 들어 이 아르페지오가 거의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아주 미묘하게 살짝만 표현하기도 하지만(플레트뇨프, 리히터, 아쉬케나지, 마추예프, 리시챠 등), 반면에 이 아르페지오를 곡 전체에 걸쳐 좀 더 과감하게 펼쳐 보여주는 연주도 있는데(아르헤리치, 카차리스), 저는 개인적으로는 악보의 아르페지오를 충실히 표현하는 연주를 좋아합니다.

[플레트뇨프]
[카차리스]


아무튼 멜랑코리하면서도 슬픈 감정을 머금고 물위를 떠다니는 듯한 A부분은 끝에서 g단조에서 G장조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점점 활기를 찾아가는데(Poco piu mosso), 이는 이어지는 알레그로 지오코소로 연결되는 경과구의 역할을 합니다.
즉 마치 서서히 흘러가던 물이 약간 빠른 물살을 탄 듯 곡의 호흡이 빨라지는데, 급기야는 아래와 같이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의 알레그로 지오코소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밝은 분위기는 곧 감정적으로 고조되면서 클라이막스로 치고 올라가는데, 마지막에 위를 향해 점점 느리게 상승하는 연속 아르페지오들은 마치 물방울이 격렬하게 튀어오르는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곡의 토대가 된 플레셰예프의 시어처럼) 하늘에 펼쳐지는 반짝이는 별들을 향하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도 있습니다. 특히 아르페지오가 연속되면서 그 템포도 점점 느려진 결과 마지막에 이르러 펼쳐지는 화음들은 한음 한음 또렷하게 연주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점점 느려졌던 템포는 다시 원래의 템포로 잠시 돌아가지만(Tempo I. 알레그로 지오코소), 점점 느리게 아래로 침잠한 후(아래 악보), 마지막으로 화려한 아르페지오를 한 번 더 펼칩니다. 아쉽게도 이 부분의 템포를 너무 늘어뜨리거나 마지막 아르페지오를 충분히 살리지 않는 연주도 더러 있는데, 이 역시 작곡가의 지시를 정확하게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곡은 서서히 처음의 멜랑코리하고도 슬픈 느낌(A’)으로 돌아가는데(아래 악보), 여기서 음악적 내용은 기본적으로 처음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고 특히 오른손 피아노와 대화하는 왼손 피아노가 좀 더 다채롭게 변모되어 처음보다는 전반적으로 음악적 내용이 더 풍성합니다.
그리고는 코다로 접어드는데, 작곡의 기초가 된 플레셰예프의 시어와도 같이 슬픔을 머금은 하늘의 별들이 신비롭게 아래로 쏟아져내리듯 싱코페이션에 의한 하행 음형이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또는 어두운 수면위로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연속 아르페지오가 부풀어 올랐다가 미련과 회한을 남기고 서서히 아주 여리게(pp) 잦아들면서 마무리됩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하였는데, 리히터, 플레트뇨프, 아쉬케나지, 리시챠, 마추예프 등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역시나 좋은 연주를 남겼습니다.

[리히터]


[리히터]


[플레트뇨프]


[리치샤]


[리치샤]


[마추예프]


[루간스키]


위의 본토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훌륭하지만, 아래 아르헤리치, 카차리스 등의 연주는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아르페지오 표현 등 작곡가가 지시한 내용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해낸 명연입니다.

랑랑의 경우는 뒤나믹스 등이 매우 섬세한 연주이기는 하지만 너무 느린 템포로 인해 곡의 자연스런 흐름이 방해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아르헤리치]


[Ronchi]


[랑랑]


[Henrik Måwe]


[Prunyi]


서두에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JTBC의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곡을 연주한 영상을 소개 드렸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그의 최근 투어 공연 프로그램이었으므로 해당 연주들도 유튜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감상의 포인트들을 염두에 두고 임윤찬이 이 곡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직접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글에서 소개 드린 <사계> 중 ‘10월’ 연주가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관련 칼럼] 조성진은 자제했고, 임윤찬은 과감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시월’

마지막으로 이 곡은 아름다운 선율로 인해 다른 악기로 또는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편곡들 또한 너무나 아름다우므로 6월이 가기 전에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이올린]


[피아노/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하프]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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