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 "도록 엉망이다" 고소 vs 국립현대미술관 "못참겠다"...무슨 일이

한국 실험미술 선구자 88세 김구림 작가
7개월 열린 개인전 전시 도록 두고 공방

작가 "인쇄 상태와 내용 엉망..바꿔달라"
김성희 국현 관장 저작권법 위반 등 고소

작가 예우 차원에서 입장 발표 자제하던 국현
5일 "이례적 예우 했으나 합의점 못 찾았았다"
지난해 8월 회고전 기자간담회에 나온 김구림 작가. 한경DB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김구림 작가(88)가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고소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현 서울관에서 열린 본인 전시의 도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미술관 측이 수정 및 재발간 요구에 무성의하게 대응했다는 게 김 작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술관은 “그간 작가의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참아왔다”고 주장하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김 작가는 5일 김 관장을 저작권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해줄 것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지난 4일 경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지난 2월부터 도록의 인쇄 상태와 내용 등을 놓고 국현과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고, 3월에는 도록 재발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현이 제작한 도록에 실린 도판이 원작을 훼손할 정도로 엉망이라는 게 김 작가의 핵심 주장이었다.도록 설명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점, 전시 출품작에 비해 도록에 실린 작품 수가 적은 점, 국현이 교정지를 흑백 인쇄물로만 전달해 작가가 사전에 도판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작가의 의향대로 작품을 내보여야 하는 저작권법상의 ‘동일성 유지 원칙’이 침해됐다”며 “미술관의 무성의한 대응으로 내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돼 고소를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그간 자제해왔던 국현이 정면 반박에 나섰다. 국현은 5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전시 도록이 재발간되지 못한 건 김구림 작가 측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현은 “작가와 16차례에 걸쳐 회의를 한 뒤 합의 내용에 근거해 도록을 제작했고, 모든 글자와 색도 작가의 검수와 수정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술관은 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간 공식적인 반박 입장을 내지 않고 재발간을 추진했다는 게 국현 측 주장이다.

국현은 “그러나 2쇄 제작을 앞두고 작가 측이 편집자를 교체하고 편집방향을 전면 수정하며 양을 대량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 김 작가가 1쇄 제작 도록의 배포를 제한하고 제작한 도록의 절반을 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지속해왔다고 미술관은 주장했다. 국현은 “전례 없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 수행하기 어렵다”며 “고소 건은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양측의 주장부터 판이하게 다르고, 입장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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