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성상부터 나비 스테인드글라스까지…800년 서양미술 한 눈에

로빌란트보에나 갤러리 소장품전 ‘서양미술 800년’
14세기부터 21세기까지 서양 미술 거장 작품 한 자리에
장 바티스트 우드리, 라퐁텐 우화 속 어부와 작은 물고기, 1739, 캔버스에 유채, 122 x 172.8 cm. /로빌란트보에나
서양미술의 역사는 넓고 깊다. 21세기 동시대미술이 존재하기 전 유럽을 주름잡았던 미술사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이름난 미술관에 가더라도, 수 백 년 전 만들어진 걸작들을 한꺼번에 눈에 담는 건 불가능하다. 장구한 유럽미술의 맥을 이해하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굳이 유럽 예술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14세기 르네상스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800여년의 장구한 서양미술사를 눈에 담을 기회가 생겼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 부스를 꾸려 애호가들을 홀렸던 로빌란트 보에나(Robilant+Voena·RV+) 갤러리가 지난 5일부터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ALT.1에서 소장품 기획전 ‘서양미술 800년’을 개최하면서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64점의 ‘마스터피스’들이 원화 그대로 전시에 걸렸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소장품전 '서양미술 800년' 전시 전경. 14세기 고딕 종교 미술품의 모습. /로빌란트보에나

‘프리즈 서울’ 홀린 RV+, 걸작 64점 모셨다

전시는 서양미술의 시대별 예술경향을 몸소 체험하는 장(場)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4세기 고딕 종교 미술 작품과 만난 후 16세기 르네상스, 17세기 바로크, 18세기 신고전주의, 19세기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20~21세기 근현대 작품을 연대순으로 만나게 된다. 유럽 화가들이 앞선 예술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어떻게 관습에 도전장을 내밀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로빌란트 보에나의 컬렉션은 독보적이다. 2004년 아트딜러 에드몬도 디 로빌란트와 마르코 보에나가 손을 잡고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이 갤러리는 유럽 미술사를 수 놓은 옛 거장들의 회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런던내셔널갤러리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과 거래하는 갤러리로 성장했다. 2009년 이탈리아 밀라노, 2020년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 차례로 분점을 내면서 미술계 주요 거점에 깃발을 꽂은 ‘큰 손’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625-1630년경, 캔버스에 유채, 81 x 68.5 cm /로빌란트보에나
실제로 작년 프리즈 서울에선 고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문화재나 다름없는 걸작을 소개하는 ‘마스터스’ 섹션에 참가한 로빌란트 보에나가 단연 돋보였다. 안드레아 바카로, 카날레토 같은 17~18세기 이탈리아 거장들의 회화부터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대작 ‘게이징볼’과 약 30억 원에 육박하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선보여 가장 많은 인파로 북적거린 부스로 손꼽힌다.

800년 명작으로 ‘시간여행’

이번 전시에서도 시대별로 한 번쯤 들어본 대가들의 작품이 눈에 띈다. 르네상스 섹션에선 프란체스코 그라나치의 '띠를 손에 쥔 성모 마리아와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 성 토마스, 성 프란체스코 그리고 성 율리아노'가 걸렸다. 바로크 섹션에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한 거장 카라바조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화가 중 가장 성취가 뛰어난 여성 예술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두 작품은 가톨릭적 사유에 대한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연하게 드러낸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 걸렸던 바카로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도 반갑다.
마르크 샤갈, 마을 위의 붉은 당나귀, 1978, 캔버스에 유채, 65 x 81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18세기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유럽 도시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풍경화와 조화와 절제라는 신고전주의 이상을 구현한 작품들이 뒤를 잇는다. 풍경화 거장 카날레토의 ‘말게라의 탑’은 당대 정치, 상업, 문화, 예술의 중심지인 베네치아 요새의 위엄이 서려 있다. 장 바티스트 우드리의 ‘라퐁텐 우화 속 어부와 작은 물고기’는 당시 유럽 화가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 형태가 드러내는데, 생명력 넘치는 개와 물고기의 모습까지 어우러져 우아한 감각이 돋보인다.전시는 20세기 이후 전개된 근현대 미술의 흐름까지 짚을 수 있어 흥미롭다. 마르크 샤갈의 ‘마을 위의 붉은 당나귀’를 비롯해 피카소, 호안 미로의 회화, 마리노 마리니의 조각 등 서양미술의 분수령인 세계대전을 전후로 오랜 표현 방식을 탈피해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창조한 거장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지만, 수백 마리 나비를 캔버스에 박제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미안 허스트의 ‘생명의 나무’ 등 다양한 주제와 기법, 매체를 탐구하는 21세기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됐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소장품전 '서양미술 800년' 전시 전경. /로빌란트 보에나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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