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누구를 위한 지구당 부활인가

이재명·한동훈이 논쟁 불붙여
정략적 방식으로 다뤄선 안 돼

강동균 편집국 부국장
지난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정치권의 시선은 벌써 차기 대선을 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대선 지지율 1·2위를 다툰다. 대선을 겨냥해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한 전 위원장은 차기 당대표를 노리고 있다. 그동안 사사건건 충돌하며 서로를 맹비난해 온 두 사람이 최근 입을 맞춘 듯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구당 부활’을 놓고서다. 이 대표는 “지구당 부활은 22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고, 한 전 위원장은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지구당은 1962년 정당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도 받으며 당원을 관리한 정당의 지역조직이다. 지역 의견을 취합해 중앙당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지만 2004년 정치개혁 차원에서 폐지됐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을 모으는 통로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후원금 모금과 공천권을 매개로 한 지역 토호세력과의 유착도 문제로 지적됐다.하지만 지구당이 없어지면서 지역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정치권의 불만이 커졌고, 이후 국민의힘은 당원협의회, 민주당은 지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지구당과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다만 이들 조직은 법에 규정된 정당 조직이 아니어서 사무소를 별도로 설치할 수 없고 유급 직원도 둘 수 없다. 후원금 모금도 불법이다.

22대 국회가 5일 개원 첫 본회의를 하고 공식 출범하면서 향후 지구당 부활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 이미 각각 지구당 부활과 관련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내에선 현역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간 의견이 갈린다. 수도권의 원외 당협위원장 대다수가 지구당을 부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영남권에 몰려 있는 현역 의원들은 부정적이다.

이 대표와 한 전 위원장이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것은 정략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에게 지구당 부활은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정치 참여를 한층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온라인 조직력이 강한 개딸이 지구당을 활용해 오프라인에서도 세력을 넓힐 수 있어서다. 한 전 위원장에게도 지구당은 원외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편으로 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내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원외 당협위원장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 안철수, 윤상현 의원도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20년이 지나 ‘지구당 부활’이 소환된 주요 명분은 현역 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형평성 문제다.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에 사무실을 둘 수 있고 후원금도 받을 수 있지만 원외 정치인은 선거기간을 빼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없고 사무실도 둘 수 없다. 그래서 지구당 폐지가 현역 의원의 기득권만 공고히 하고 정치 신인의 국회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중요한 건 지구당 부활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다. 정치적 형평성 문제는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반드시 지구당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온라인을 통한 정치활동이 보편화한 지금 상황에서 지구당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각 당의 당권이나 차기 대선의 유불리를 따지는 등 정략적인 방식으로 다뤄서도 안 된다. 그래선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