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 세계 클래식 팬들로 가득 찬 '프라하의 봄' 음악제

제79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베를린 필 오프닝 콘서트
카라얀, 번스타인도 찾았던 현장을 직접 가보니
거장들 참여하는 수십개 공연은 이미 매진
풀밭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며 환호

파벨 트로얀 감독 인터뷰…“전통과 현대적 시각 접목할 것”
“훌륭한 국제 클래식 음악 축제가 많지만 ‘프라하의 봄’은 단 하나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올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오프닝 콘서트를 맡는다는 소식을 전하며 올린 글귀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를 보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이 먼저 떠올랐을 수 있다. 체코 현지인과 음악인들 사이에선 다르다.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5월 12일 시작해 6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악 축제의 공식 명칭이 프라하의 봄이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독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창설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클래식 음악제로 꼽힌다.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레너드 번스타인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예후디 메뉴인,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까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라하의 봄에서 전설이라고 불린 음악가들이 수많은 세기의 명연(名演)을 토해냈다.
지난달 열린 제79회 프라하의 봄 현장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다. 올해 음악제에 담긴 의미는 예년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스메타나는 체코 밖에선 ‘신세계 교향곡’을 쓴 안토닌 드보르자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곡가지만, 체코 안에선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 그 자체다. 1872~1879년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체코 독립에 대한 열망, 고국의 행복과 영광을 향한 염원을 담아 작곡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매해 프라하의 봄 오프닝 콘서트 때마다 연주되는 전통이 있다. 올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선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와 체코 관광청의 공식 초청을 받아 현지를 다녀왔다. 블타바강을 따라 흘러넘치던 클래식 음악의 봄날을 기록했다.

파벨 트로얀 감독 “베를린 필의 스메타나 ‘나의 조국’ 공연…중요한 사건”

지난달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3일간 이어진 ‘제79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체코를 대표하는 공연장 오베츠니 둠(시민회관), 루돌피눔을 중심으로 프라하 일대에서 펼쳐졌다. 이 기간 열린 공연만 총 50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장 키릴 페트렌코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출신의 거장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명지휘자들과 명문 악단들이 연일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교향악, 실내악, 독주 등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프닝 콘서트는 특별히 프라하 캄파 공원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됐다. 그 덕에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마음껏 환호를 지르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제 기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도 열려 젊은 연주자들의 경쟁과 새로운 신예의 탄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올해 ‘프라하의 봄’ 축제는 오프닝 콘서트부터 화제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지휘 명장들이 이끌어온 독일 명문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연주로 축제의 문을 연다는 소식 때문이다. 베를린 필은 1966년 당시 상임 지휘자 카라얀과 함께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 초청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인연을 맺어왔으나, 이 페스티벌의 선봉에 서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 내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파벨 트로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감독(40)은 “체코에서 스메타나의 음악은 모든 국민이 음표 하나하나를 꿰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우린 언제나 그의 작품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길 열망해왔다”며 “현시대 최고의 명문 악단인 베를린 필의 오프닝 콘서트를 수년간 구상해왔고, 올해 드디어 실현됐다”고 했다. 그는 또 “베를린 필의 ‘나의 조국’ 연주는 스메타나의 음악이 세계적 작품이란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스메타나의 200번째 생일을 맞이한 해여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국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예술가의 관점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는 아주 열정적으로 스메타나 음악의 진가를 표현해냈고, 그의 손짓 아래 악단은 대단한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프라하의 봄 축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겁니다.”
2022년 8월 프라하의 봄 축제 감독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파벨 트로얀은 2년째 음악제를 이끌고 있다. 유서 깊은 유럽 대표 음악 축제의 미래를 그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프라하의 봄’이 지금껏 쌓은 명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는 동시에 현대적 시각을 끊임없이 접목하면서 지속 발전하도록 하고 싶어요. 전통을 지키려는 정신,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정신이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결합한 클래식 축제니까요. 경제적, 지정학적 상황이 격동하는 요즘이지만 그 어떤 과정에서도 최고의 예술적 경험을 전할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그는 창립 80주년을 맞는 2025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계획에 대해서도 살짝 귀띔했다. 트로얀은 “내년 페스티벌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의 체코 데뷔 무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얍 판 츠베덴 지휘)의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데뷔 무대 등이 예정되어 있다”며 “미국을 대표하는 악단들과 새로운 음악적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다. 다채롭고 풍성한 공연 프로그램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현장 인터뷰 ②) 젊은 거장 흐루샤 "프라하의 봄은 나에게 빈·베를린 필보다 중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공연 리뷰) 15분간 기립박수…스메타나 오페라 '리부셰' 선율에 소름이 돋았다

프라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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