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보수의 위기는 얕은 뿌리 탓…민주주의 근본부터 성찰해야"

Zoom In - '보수 원로'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나라의 소중함 고민할 시기"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도
"민주공화국 가치 빠르게 이식한
이승만은 처칠보다 위대한 인물"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지난 3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그 근본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혁 기자
“오랜 시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경제보다 왜 나은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논의가 부족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지식인들이 근본적인 성찰을 할 때입니다.”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 같은 나라와 달리 ‘후진국형 발전’을 한 한국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적었고 이런 한계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 1호 러시아사 박사(미국 하버드대)로 고려대와 서울대 교수를 지낸 이 명예교수는 여성 1호 대사(핀란드·러시아)와 KBS 이사장,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을 거쳤다.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꼽히는 그는 최근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이 전 대사는 4·10 총선 이후 ‘보수 위기론’이 대두되는 것과 관련해 “보수라는 용어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세력’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보수 위기론 등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나라가 왜 소중한 것인지와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민주 국가를 운영할 만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에 착오도 많았다”며 “1970~1980년대 대학에서 정치 이슈로 날마다 데모하고 공부를 못 해 생긴 공백 탓에 오늘날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제도화’ 측면에선 공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주화의 내용을 채우는 준비에는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가 누적되면서 “지성계는 정치에 휘말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학계에서도 선전 선동이 지식인 줄 아는 풍토가 생겼다”는 게 이 전 대사의 진단이다. 그는 “이런 틈을 활용해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교묘하게 힘을 키웠고 남남갈등이 커졌다”고 부연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뿌리가 깊지 않은 탓’에 발생했다고 본 이 전 대사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시발점으로 1948년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주목하고 있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 전 대통령은 꾸준한 독립운동을 통해 주요 국가들에 ‘한국의 독립 열망’을 강하게 인식시킨 인물”이라며 “외부로부터 주어진 민주 체제에 내실을 채우는 작업을 주도하고 민주 공화국의 가치를 정착시킨 이 전 대통령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보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이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만연한 것에 대해선 “공산주의 측에서는 이 전 대통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태어날 수 없었다고 보기에 이 전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에 집중했고 그 영향이 사회에 미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공산주의의 실상을 명확하게 파악한 인물이 없었던 만큼, 공산주의자들의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전 대사는 “공산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전과 선동을 생명선으로 삼았다”며 “카를 마르크스 이론을 따르더라도 공산주의가 성공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후진국인 옛 소련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거짓 선전 선동, 역사 왜곡을 체제의 생명선으로 삼았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람들의 의식을 조종하는 것이 실력대결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라며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에 호소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몹시 나쁜 사람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2년 넘게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는 러시아가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중요한 이웃이기 때문에 한·러 관계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동욱/이소현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