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美암학회에 초대받지 못한 韓 AI 신약 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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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항암제 주역으로 떴지만“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이 전시부스를 차릴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전례 없는 일이다.”
K바이오는 명함도 못 내밀어
시카고=이영애 바이오헬스부 기자
지난 4일 폐막한 세계 최대 암학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4’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국내 제약사 임원의 말이다. ‘항암제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에서 4만여 명의 암 연구자가 참가했다.올해 행사에서도 항암 신기술을 꽤 많이 선보였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국내 1위 제약사 유한양행이 개발해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에 기술 수출한 폐암 신약 ‘렉라자’의 임상 결과에 참가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일 만큼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ASCO 2024’에서 확인한 변화는 또 있다. 바로 AI 기업들의 참여였다. 이번 암 학회에서 AI를 주제로 발표된 초록만 145건에 달했다. 이례적으로 많은 건수라는 게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의 반응이었다. 지난달 31일 개막식에서도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오프닝 세션 주제 중 하나가 AI였다. 조너선 칼슨 마이크로소프트(MS) 상무가 강연자로 나서 GPT-4를 항암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소개했다.
AI 기업들은 최소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전시부스도 차렸다. AI 기반 신약후보 물질 발굴 기업인 캐리스라이프사이언스, 임상 분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서트AI, 템퍼스가 글로벌 제약사들과 나란히 전시부스를 열어 기술 홍보에 열을 올렸다.반면 국내 AI 기업의 참여는 아쉬웠다. 눈에 띄는 참여는 루닛 정도였다. 루닛은 AI 바이오마커 분석 결과 7건의 포스터를 발표했다. 다른 한국 AI 기업의 참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AI 신약 개발사 대부분은 ASCO 대신 비슷한 시기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4 바이오 USA’를 선택했다. 당장 보여줄 연구개발 성과가 마땅찮다 보니 전시와 비즈니스 파트너링 중심의 박람회에 참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ASCO에 참가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역대급으로 많았다는 게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수십여 곳의 국내 기업이 전문가 세션 발표, 포스터 발표 등을 통해 그간의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행사가 열린 닷새 내내 현장에서 한국인 연구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AI 신약 기업들의 저조한 참여가 여간 아쉽지 않았다.
제약·바이오산업에서 AI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뿐 아니라 구글,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기업이 다음 먹거리로 AI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 연구계가 모두 머리를 맞대 내년 ASCO에서는 개발 성과를 내놓는 국내 AI 신약 개발사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