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면 퇴사"…여직원에 고백 공격한 유부남 상사의 '최후'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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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직장 상사, 미혼 부하에 1년 넘게 구애기혼 직장 상사가 미혼 부하 직원에게 1년 넘게 구애행위를 지속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고백 거절 시 퇴사를 암시하는 등 사적 감정과 업무를 연관시켰다면 해고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수차례 거절에도 "보고싶다" "나를 좋아해달라"
“회사의 다른 이사와 사귀냐” 캐묻다가
답변 거절 당하자 무단 결근
법원 "업무에 사적 감정 반영...해고 사유"
회사도 '이성적 감정 고백은 남녀 사이의 사적 관계'라는 안이한 인식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수원고등법원 5-1 민사부는 지난 1월 근로자 A씨가 자신을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 무효확인 항고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기혼 남성 A는 2020년 7월 한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해 본부장으로 근무해 왔다. A는 입사한 지 반년이 좀 지난 이듬해 2월, 소속 팀 미혼 여성 B에 “이성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런데도 A의 집착은 계속됐다. "보고 싶다""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거나 일방적으로 꽃바구니를 배달시키는 일도 있었다.
B는 “좋은 상사로 생각하고 존경하지만 죄송하다”고 답하는 등 여러 차례 거절 의사표시를 전했다. 하지만 A의 일방적인 구애는 1년 넘게 계속됐다. 급기야 10월에는 B에 “회사의 다른 이사와 사귀냐”고 물으면서 이성 관계를 확인하려 들기도 했다. B가 "왜 궁금하냐"며 선을 긋자 A는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B는 회사에 이런 반복된 구애 사실을 알리고 A에 대한 징계와 인사조치를 희망한다는 고충 신고서를 제출했다.결국 회사는 A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근거로 징계 처분에 들어갔고 결국 그해 12월 해고 처분을 내렸다. 이에 A가 회사를 상대로 "해고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
법원은 A의 괴롭힘과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A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지위 내지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고 봤다.
법원은 "A가 B의 상급자로서 인사평가 권한이 있었으며, 구애 행위의 상당수는 사내 업무용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뤄졌다"며 "A가 퇴사하면 A의 주도 아래 진행 중인 40억 원 규모의 대규모 마케팅 프로젝트에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A는 교제를 거절하면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B에 반복적으로 밝혔다"고 지적했다. 업무에 사적인 감정을 반영했다는 지적이다.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괴롭힘도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기적으로 집요하게 구애를 계속했고, 업무와 연관 지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 B가 A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교제를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는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이거나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A는 퇴사를 암시하자 B가 만류했고, 식사를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성으로서 거부해도 상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직장 내 상급자로부터 고백받은 하급자가 보일 수 있는 전형적이고 통상적 반응”이라며 일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은 "사적 감정을 업무와 연관 지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인 점,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을 보내고 사전 승인 없이 출근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A와 회사 사이에 신뢰 관계는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현저히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A가 계속 근무하는 것은 피해자 B의 고용 환경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좋아한다는 감정 표현이 어떻게 성희롱이냐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것"이라며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둘러싼 조치가 강화된만큼 회사도 어정쩡하게 대처했다가는 법률적 책임을 지게 될 수밖에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