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본주의의 아버지, 그는 어떻게 1만엔권 모델이 됐나 [서평]



신현암 지음
흐름출판
268쪽|1만8000원
공자는 부자를 싫어했을까.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아니라고 말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오늘날 일본 경영 체계를 설계한 경영가다. 일본 최초의 벤처투자자로 불리기도 한다. 일평생 500개의 기업과 600개의 사회공헌기관을 세우는 데에 관여했다. 도쿄가스, 기린맥주, 대일본제당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오는 7월부터는 40년 만에 바뀌는 1만엔 신권의 초상 모델로 등장할 예정이다. 1만엔권은 일본 화폐 중 가장 큰 단위다. 시부사와가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는 팩토리8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신현일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책이다. 저자는 1990년대부터 일본에 오가며 일본 기업과 트렌드를 소개해온 '일본통'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부사와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경영학적 가르침을 소개한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인과 무사의 교육을 모두 받은 그는 20대에 '막부 타도'를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키려고 하기도 했다. 계획이 틀어지고 체포될 위기에 처한 그는 우연한 기회로 도쿠가와 가문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1867년 프랑스 파리만국박람회에 참석한 시부사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유럽의 경제 시스템과 선진문물을 목격하면서다. 이때 경험으로 그는 주식회사, 은행제도, 산업 설비를 포함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일본에 도입하겠다고 결심한다.

마침 일본 사회는 '왕정복고 대호령'을 선포한 시기였다. 막부 체제를 버리고 천황 중심의 정부를 만들어 근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시부사와는 신정부에 합류해 국립은행 기초가 되는 조례를 만들고 조폐국을 설립했다.

공직을 떠난 시부사와는 일본 최초 근대 은행인 '제일국립은행'의 총감을 맡았다. 이후에도 도쿄주식거래소, 제지소, 상공회의소를 세우는 등 일본 자본주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70살의 나이에 경영에 손을 뗄 때까지 500여 개 기업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막대한 경제력과 영향력을 얻었지만, 그는 재벌이 되길 거부했다. 매번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나와 또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육성했다.

대신 사회 공헌에 집중했다. 병원, 학교, 보육원 등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복지 시설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사회공헌기관만 600여개.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말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시부사와가 이런 삶을 산 배경에는 공자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는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에서 '청부론'을 주장했다. 깨끗한 부자라는 뜻이다. 그는 "도덕과 결합한 부는 얼마든지 떳떳하다. 공자의 가르침이 그렇다"고 강조했다. 도덕적 경영으로 번 돈으로 소외된 자들을 돌본 시부사와는 경제적 성취와 도덕을 조화시킨 삶을 살았다.
책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삶과 당시 일본 사회를 읽기 쉽게 설명한다. 시부사와의 일대기 순으로 흘러가지만 관련된 경영 이론과 저자의 감상으로 각 장을 마무리한다. 역사보다는 경영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