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자어 '백(白)'이 만들어낸 우리말 가지들 (2)

白의 대표적인 의미는 '희다'이다. 많은 말이 여기서 가지를 뻗어 만들어졌다. 그중 '백미'와 '백안', '백병'을 알아둘 만하다. '백미(白眉)'는 흰 눈썹으로,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 원인이 이번 회고록에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달 나온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일파만파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 관심은 이 문장에 쓰인 ‘백일하’라는 말에 있다. ‘백일하(白日下)’는 주로 ‘백일하에~’ 꼴로 쓰여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뚜렷하게’란 뜻을 나타낸다.

‘백주(白晝), 백일(白日)’은 곧 ‘대낮’

‘백(白)’은 다양한 의미로 우리말 곳곳에 자리 잡아 풍성한 단어군을 이루는 데 기여한다. 한자 白은 어원적으로 촛불을 그린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본래 ‘밝다, 빛나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런 의미가 담긴 말이 ‘백일(白日)’이다. ‘환히 밝은 낮’을 나타낸다. 순우리말로는 ‘대낮’ 또는 ‘한낮’이다.

‘백일’은 요즘 단독으로 잘 쓰이지 않지만 ‘청천백일(靑天白日)’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이 맑게 갠 대낮’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백일하’에도 그 쓰임이 남아 있다. ‘아래 하(下)’와 어울려 밝은 대낮 아래, 즉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분명하게’란 뜻으로 확장됐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관련해 항간에 “백주대낮에 쓰레기 더미와 삐라가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때의 ‘백주(白晝)’도 ‘백일’과 같은 말이다. 원래 “백주에 대로(大路)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처럼 쓰이는 이 말은 순우리말로 하면 ‘대낮에 큰길에서~’가 된다. 이를 줄여 “백주대로에서~”처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착각해 사람들이 ‘대로’ 대신에 ‘대낮’을 넣어 “백주대낮에~”로 말한다. ‘백주’나 ‘대낮’이나 같은 말이니 겹말, 즉 ‘역전앞’과 같은 꼴이다. 말은 필요에 따라 겹말도 흔히 쓰니 이를 탓할 수는 없으나, 그 유래는 알고 써야 할 일이다.

‘백수(白手)’는 빈손, 실업자를 의미

‘백일’이 쓰인 우리말로는 백일몽, 백일장도 알아둘 만하다. ‘백일몽(白日夢)’은 직역하면 ‘대낮에 꾸는 꿈’이다.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른다. ‘백일장(白日場)’은 국가나 단체에서, 글짓기를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를 말한다. 이는 조선 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치르던 일에서 유래했다.

‘백(白)’은 어원적으로 ‘밝다, 빛나다’에서 시작해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라는 뜻을 가지게 됐다. ‘고백(告白)’이나 ‘자백(自白)’할 때 이 글자가 들어있다. ‘담백(淡白)하다’란 말에는 깨끗하다, 순수하다, 맑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힌 것,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리켜 ‘백숙(白熟)’이라 한다. ‘숙(熟)’이 ‘익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백숙은 ‘맑게 삶아낸 것’이다.

‘공백(空白)’ ‘여백(餘白)’이란 말도 살펴볼 만하다. 이때의 백(白)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백수(白手)’가 나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손, 즉 ‘빈손’을 나타낸다. 이게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 진화했다. 요즘은 특히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白의 대표적인 의미는 ‘희다’이다. 많은 말이 여기서 가지를 뻗어 만들어졌다. 그중 ‘백미’와 ‘백안’, ‘백병’을 알아둘 만하다. ‘백미(白眉)’는 흰 눈썹으로,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촉한 때 마씨(馬氏) 다섯 형제가 모두 재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썹 속에 흰 털이 난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는 데서 유래했다.

‘백안(白眼)’은 직역하면 눈의 흰자위를 나타낸다. 여기서 ‘백안시(白眼視)’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흰자위를 드러내며 흘겨본다는 뜻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행동 또는 눈빛을 말한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백병(白兵)’이라 하면 적과 직접 몸으로 맞붙어 싸울 때, 적을 베고 찌를 수 있는 칼이나 창 따위의 무기를 말한다. 도검류의 칼날이 백색으로 빛난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 백병으로 무장한 채 싸우는 전투가 ‘백병전(白兵戰)’이다. 그러니 백병전은 ‘적과 직접 맞붙어서 총검으로 치고받는 싸움’을 가리킨다. ‘육박전(肉薄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