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과 대화를 나눴던 20세기 건축 거장의 삶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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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
웬디 레서 지음
김마림 옮김/사람의집
656쪽|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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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관을 설계한 사람은 루이스 칸. 미국 유명 건축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힌다. 안도 다다오에 앞서 노출 콘크리트와 건물 내로 스며드는 빛을 적극 활용했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 필립스 액스터 도서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이 대표 작품이다. 그는 73세였던 19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기차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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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훌륭한 건축가지만 복잡한 사생활이 논란이 됐다. 그는 공식적으로 아내 에스더와 딸 수 앤을 두었지만 세 명의 여성과 혼외 관계를 가졌다. 바람만 피운 것이 아니라 혼외 자녀를 낳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세 가족을 따로 부양했다. 칸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은 2003년 그의 아들인 너새니얼 칸이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건축가’를 공개하면서 나아졌다. 칸은 세 가족 사이를 오가며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그려진다.
물론 칸과 가정을 꾸린 여성들과 아이들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산 것은 아니었다. 책은 ‘정부’라든가 ‘혼외자’라는 말을 들으며 이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 아버지 칸에 대한 그리움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늦게 꽃을 피운 그의 생애 마지막 20년은 화려했다. 대표작들은 60대와 70대 초반에 지어졌다. 로마에 머물며 고대 건축물에 눈을 뜬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책은 “이 기간 질량과 무게가 그에게 특히 중요해졌다”며 “칸은 옛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새것에 대한 존경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은 선문답 같은 그의 유명한 일화에서 따왔다. 그는 벽돌에 말을 걸곤 했다. “벽돌아, 네가 원하는 게 뭐지? 그럼 벽돌이 대답합니다. 난 아치가 좋아. 그래서 벽돌에 이렇게 말하죠. 아치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어. 대신 개구부 위에 콘크리트 상인방을 사용할까 해. 그건 어떻게 생각해? 그럼 벽돌이 또 말하죠. 난 아치가 좋아.”칸의 삶을 잘 정리한 책이지만 건축학적 접근이 약한 것은 책의 약점이다. 저자가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