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저금의 재발견

눈길 끄는 '고금리' 금융상품
'눈 가리고 아웅' 식이 대부분

투자처 다양해지면서
'저축의 미덕'도 퇴색되고 있어

투자의 기본은 종잣돈 마련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돼

임현우 디지털라이브부 차장
연 20%. 최근 짠테크족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iM뱅크 특판 적금이 내세운 최고 금리다. iM뱅크, 이름이 좀 많이 생소하다. 하지만 신생 은행은 아니다. 대구은행이 지방은행에서 전국구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서 바꿔 단 새 간판이다. 판매를 시작한 지난 5일 오전부터 모바일뱅킹 앱 접속이 폭주했고, 다음주 초쯤이면 계좌 10만 개를 돌파할 전망이라고 한다.

‘파격적 상품’에 대한 ‘폭발적 인기’일까. 사실 은행 고객들도 다 안다. 이런 파격적 금리는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적금은 하루 최대 5만원까지 60일 동안만 부을 수 있다. 한도를 꽉꽉 채워 300만원의 원금을 넣어도 세후 이자는 4만원 남짓이다. iM뱅크는 양반이다. 광고에서는 연 10% 안팎의 이율을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추첨으로 소수에게만 최고 금리를 주는 꼼수를 쓰는 은행도 있다. 그런데도 기꺼이 이런 미끼에 속아주는 사람이 많다는 건? 고금리 저축 상품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심하다는 의미일 테다.
고금리 탓에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예·적금 금리는 반대로 떨어지고 있다. 현재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의 평균 금리는 연 3.5%.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5%)와 차이가 없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으로 몰려드는데, 정부에서는 가계대출을 강하게 억제하다 보니 은행들이 굳이 예금 금리로 경쟁하지 않아서다. 2금융권으로 넘어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저축은행의 1년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3.6%.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예금은 1금융권보다 오히려 이율이 낮다. 경영 실적이 나빠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저축은행도 높은 이자를 줘가며 자금을 유치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선 오랫동안 저축이 미덕이었다. 60년 전인 1964년에는 ‘저축의 날’이 제정됐다. ‘세 살부터 저축하면 여든까지 가난 없다’ ‘손에 쥐면 쓰기 마련, 저축하면 늘기 마련’ ‘절약하는 남편 되고 저축하는 주부 되자’….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구호들은 그때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 태어난 기자 세대만 해도 선생님 지도 아래 모든 학생이 통장을 만들고, 저금통을 가득 채우면 상도 받은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금융 투자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예전에 비해 존재감이 많이 퇴색한 것이 사실이다. 저축의 날이라는 기념일도 2016년 ‘금융의 날’로 바뀌면서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민의 재산 형성 방식이 저축을 벗어나 주식, 펀드 등으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금융당국이 밝힌 개편의 이유였다.동학개미운동 바람이 사그라든 이후 적지 않은 개인투자자가 한국 증시를 떠났다. 예탁결제원 자료를 보면 국내 주식 소유자는 지난해 말 기준 1403만4097명. 1년 새 1.7%(20만7109명) 줄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층의 이탈이다. 20대는 25만6821명, 30대는 11만5036명 급감했다. 이들의 행선지는 크게 둘로 갈렸다. 한쪽은 ‘미장’(미국 주식 시장)으로 이동했고, 다른 한쪽은 아예 안전 성향으로 돌아섰다. 주식 대박, 코인 대박, 부동산 대박이 넘쳐난 코로나 시기에는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 모으면 티끌’이라고도 했다. 위험자산을 잠시 손에서 놓고 예·적금을 택한 사회 초년생이라면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다. 이래저래 저축하는 맛을 느끼기가 참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정글에 뛰어들기보다 종잣돈을 두둑이 모은 다음 투자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재테크 수단으로 트렌디하거나 핫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기본은 어쨌든 저축이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로 ‘누구나 1억 쉽게 모으는 방법’이 있다. 월 264만원씩 3년, 혹은 153만원씩 5년, 그것이 버겁다면 월 106만원씩 7년, 앞뒤 가리지 말고 그냥 저축만 하라는 것이다. 때론 “비현실적이다”는 악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유튜버는 태연하게 응수한다. “몇 년 안에 1억원을 모으려고 한다면 자기관리가 필수다. 술, 담배, 유흥에 찌든 사람이 이걸 할 수 있나. 목표를 가진 순간 인생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1억원을 모으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묻는 사람들의 99%는 이 돈을 모아본 적이 없다. 일단 만들어 봐라.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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