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홍길동 자처하는 '유튜브 자경단'의 기막힌 돈벌이

가해자 신상 털어 구독자 모아
2차 피해 등 사적제재 논란 커져

조철오 사회부 기자
‘고소를 무서워하지 않고 할 말 하는 채널’이라고 선전하는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지난 4일 20여 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일반인인 A씨를 지목하고 그의 가게를 공개했다. A씨는 이어지는 사이버 테러에 참다못해 5일 “어젯밤부터 지옥입니다. 전 밀양 사건 가해자의 애인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경찰에 진정서도 냈다. 그렇지만 나락보관소의 사과는 “잘못한 부분에 대해 저 또한 공격받고 나락으로 가겠다”는 말뿐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나쁜 놈 신상 공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적 제재’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나락보관소는 1일부터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실명을 연이어 공개하고 있다. 그의 동영상은 며칠 만에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압도적 관심을 끌었지만 A씨와 같은 무고한 피해자도 나오고 있다.나락보관소의 활동 이후 가해자 일부는 처참한 대가를 치렀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됐고, 다른 가해자가 일했다고 지목된 식당은 결국 폐업했다. 나락보관소는 “다른 가해자들도 서로를 제보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국민에게 공분을 산 밀양 사건 가해자들이 ‘모자란 처벌’을 받았고, 뒤늦게 조리돌림당하는 것에 대해 많은 네티즌이 ‘사이다(속 시원하다)’라는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하지만 이런 사적제재가 문제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피해자가 사건이 다시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점에서다.

공분을 산 사건 등을 파헤치며 실명을 공개하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 유튜버가 늘면서 무고한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현충일에 일본 욱일기를 내걸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동명이인이 네티즌에게 공격받는 일이 있었다. ‘강남역 의대생 살인 사건’ 범인의 신상털이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 신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돼 가족들이 “제발 자제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이런 유튜버들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면서까지 스스로 자경단 행세를 하는 것은 결국 수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밀양 사건에 뛰어든 나락보관소 구독자는 이전보다 열 배 이상 늘었고, 그에게 수십만원의 후원금을 보낸 뒤 인증하는 네티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락보관소는 7일 뒤늦게 “피해자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그동안 올린 영상을 삭제했다. 일부 네티즌은 “나머지 가해자 40여 명이 비웃고 있겠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결국 사법 시스템을 불신하는 시민들이 사적 제재에 환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적 제재에 환호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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