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호주·노르웨이까지 간다…'국가대표 항공사' 자리 넘보는 L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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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C 전성시대“그동안 장거리 여행은 대한항공 아니면 아시아나항공이었는데, 이제는 저비용항공사(LCC)로 미국 유럽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내 돈 내고 가는 여행이니 티켓 값이 훨씬 싼 LCC에 먼저 눈이 가네요.”
저비용항공사의 반란
日·동남아 넘어 장거리까지
9개社 치열한 경쟁으로 성장
이달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여행을 앞둔 직장인 김모씨(34)는 에어프레미아 티켓을 끊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가격. 에어프레미아 왕복 티켓 값은 124만원으로, 아시아나항공(174만원)보다 50만원 저렴했다. 두 번째는 서비스다. 에어프레미아의 이코노미석 간격은 83~89로, 아시아나항공(83~86)보다 넓다. 기내식도 나온다. 무료 주류 제공 등 몇몇 서비스만 빼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장거리 뛰는 LCC
국내 LCC들이 처음부터 서비스에 신경을 쓴 것은 아니다. 해외 LCC처럼 가격 하나만 봤다. 좌석 간격을 좁히고, 각종 서비스를 없애는 식으로 아낀 비용을 티켓 값을 낮추는 데 썼다.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국내선을 이런 식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국내선 시장을 ‘LCC 천하’로 만들었다. 올 들어 4월까지 국내선 LCC 이용객은 661만 명으로, 대형 항공사(FSC·360만 명)의 2배였다.LCC들의 다음 타깃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2~5시간짜리 중거리 시장이었다. 국내선을 통해 한 번 LCC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중거리 노선도 쉽게 받아들였다. 한~일 노선의 LCC 점유율은 올 1~2월 기준 65.5%에 달했다.국내선과 단거리 노선을 점령한 국내 LCC들의 눈은 이제 ‘마지막 퍼즐’인 장거리 노선에 꽂혔다. 에어프레미아는 11일부터 노르웨이(오슬로)로 비행기를 띄운다. 노르웨이까지 운항하는 국내 항공사 직항은 현재 없다. 이 회사는 이미 미국 LA·뉴욕·샌프란시스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도 비행기를 띄우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하반기 2대의 대형 항공기가 들어오면 다른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 호주 노선을 뚫은 티웨이항공은 지난달부터 크로아티아 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한국형 LCC 모델’로 승부
국내 LCC는 해외와는 사업모델이 다르다. 저렴한 가격에 올인하는 해외 LCC와 달리 어느 정도 무료 서비스도 제공하고, 충성 고객을 붙잡기 위해 멤버십 제도도 운용한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이 그렇다. 이들 LCC는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항공권 수량에 제한을 두는 FSC와 달리 언제든지 포인트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덕분에 제주항공의 500만 회원 중 12%는 재구매 고객이다.업계에선 인구 5000만 명짜리 시장에 LCC가 9개나 있다 보니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국 LCC 수는 미국과 같고, 일본(8곳) 독일(4곳)보다 많다.
○“항공 주도권 LCC에 넘어갈 것”
업계는 앞으로 국내 항공시장의 주도권이 LCC로 완전히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조만간 완료되면 국내 FSC는 대한항공 한 곳만 남기 때문이다. 티웨이항공은 합병 조건으로 대한항공이 내놓기로 한 유럽 4개 노선(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프랑크푸르트)을 넘겨받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내놓은 화물사업부 인수전엔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 에어인천 등 LCC가 대거 참여했다.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 계열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 사모펀드가 지분을 갖고 있는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 등이 향후 매물로 나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이 손에 넣으면 규모 면에서 FSC 못지않은 ‘메가 LCC’가 나올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겨루던 항공시장 주도권 경쟁은 앞으로 ‘대한항공 대 LCC’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후/신정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