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40년 만에 '1만엔 지폐' 새 얼굴로 바꿀까 [김일규의 재팬워치]

7월부터 1만엔권 초상 교체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사익, 공익 양립하는 도덕경제합일 주장
국내선 '한반도 침략 선봉' 비판도

기시다 감세 정책, 시부사와 영향
"국가보다 지지율 때문 아니냐" 지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1만엔권 얼굴이 오는 7월 3일부터 바뀐다. 일본 지폐 중 가장 큰 단위인 1만엔 신권의 초상 모델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다. 1984년부터 40년간 1만엔의 얼굴이었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를 대신해 처음으로 기업인이 등장한다.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시부사와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은행, 철도 등 500개에 달하는 기업을 세우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논어와 주판’을 구호로 공자의 가르침을 일본 자본주의에 심으려 했다. 그 뿌리는 ‘도덕경제합일론’이다. ‘돈을 버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행동은 언젠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국내에서 시부사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제일국립은행이 1900년 전후 대한제국에서 허가 없이 발행한 10엔 등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가 화폐도 만들고, 철도도 놨으니 소급해 보면 침략적 성격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반도 침략의 선봉에 섰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일 시부사와를 소개하며 “중요한 것은 ‘사익’과 ‘공익’을 양립시키는 것이다. 시부사와는 그것이 가능해야 국가 전체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확산한 신자유주의는 시부사와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자본주의와는 달랐다고 덧붙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목표로 내세운 것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현이다. 정권 출범 후엔 ‘부자와 빈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분열’을 막겠다고 내각의 기본 방침에 명시했다. 시부사와의 사상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기시다 내각은 이달부터 정액 감세 정책을 시행했다. 납세자와 부양가족 1인당 소득세 3만엔(약 26만원)과 주민세 1만엔(약 8만7000원) 등 총 4만엔(약 34만7000원)씩 세금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 소득이 연간 1805만엔(약 1억5700만원)을 넘는 고소득자는 감세 혜택을 받지 못한다.

기시다 총리는 그동안 “세수가 늘어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닛케이는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시부사와가 주창한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닛케이는 그러나 이번 감세 정책에 부정적이다. “급격한 인구 감소 등으로 필요한 예산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며 “재정에 여유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감세보다 국가 전체에 더 도움이 되는 돈의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감세와 관련 지원금을 합하면 정부와 지자체 예산 약 5조4000억엔(약 47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닛케이는 애초에 정부가 이번 감세의 핵심 목표인 소비 진작 효과를 제대로 검증한 흔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일본 민간연구소 노무라소켄은 감세 등에 따른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19%에 머물 것으로 추산하면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공익보다는 선거를 위한 사익을 추구하는 감세가 아닌가’라는 게 닛케이의 시선이다. 집권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반년 넘게 20%대 ‘퇴진 위기’ 수준 지지율을 기록 중인 기시다 총리가 감세로 반등을 노릴 것이라는 해석이 많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많은 국민들은 이미 다 꿰뚫어 보고 있다”며 “공익이란 무엇인가. 총리도 원점에서 돌아볼 때”라고 지적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