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스킨라빈스가 핑크 블록팩·스푼 포기한 까닭 [오형주의 산업탐구]

배스킨라빈스, 브랜드 상징인
핑크색 블록팩·스푼 사용 중단
종이 상자와 나무 스푼으로 대체

‘스튜디오 엑스트라’가 친환경 변화 주도
글로벌 기업 출신 김진희 디자인실장
2021년부터 ‘지속가능한 디자인’ 추진

“식품업계의 파타고니아 될 것”
배스킨라빈스가 원래 플라스틱으로 돼 있던 아이스크림 용기인 블록팩과 핑크스푼을 각각 종이와 나무 재질로 교체한 모습. 비알코리아 제공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담긴 분홍색 블록팩과 스푼. ‘배스킨라빈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요즈음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가보면 이 같은 플라스틱 소모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재생 용지로 만든 종이 상자와 나무 소재 스푼이 빈 자리를 메웠다.

배스킨라빈스의 이런 ‘친환경 전환’을 이끈 건 ‘스튜디오 엑스트라’라는 비알코리아 내 디자이너 집단이다.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비알코리아 전략총괄임원)의 주도로 2021년 꾸려진 이 조직은 배스킨라빈스의 변화를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둔 디자인을 통해 구현해 내고 있다.스튜디오 엑스트라의 중심에는 김진희 비알코리아 디자인실장(47·사진)이 있다. 김 실장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처음엔 내부에서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정체성을 없애는 무리한 도전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며 “배스킨라빈스가 ‘파타고니아’처럼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허 부사장의 결단으로 성공리에 추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소재로 된 블록팩은 레고처럼 쌓을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김 실장과 디자이너들은 블록팩 소재를 종이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런 모양과 분홍색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러면서도 상자 모서리를 둥글게 말아내는 기술을 적용해 고유한 정체성을 살렸다. 블록팩을 종이로 전환해 절감할 수 있는 플라스틱 양은 연간 520t에 달한다.

배스킨라빈스의 도전은 세계 유수 디자인상을 휩쓰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종이 블록팩을 비롯해 음료 용기, 케이크 상자와 받침 등 제품 포장 대부분을 재생 용지로 구현한 디자인 시안이 올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커뮤니케이션디자인 부문)’과 ‘iF 디자인 어워드(식품패키징 부문)’를 거머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퍼내는 도구인 스쿱에서 착안해 개발한 전용 서체인 ‘스쿱체’도 iF 어워드서 입상했다.
김진희 비알코리아 디자인실장(상무)가 종이로 된 블록팩 등 배스킨라빈스의 친환경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알코리아 제공
식품업계에서는 비알코리아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파격을 선보인 데에는 김 실장의 글로벌 경험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실장은 미국의 예술·디자인 명문대학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졸업 후 로레알과 티파니, 에스티로더, 세포라 등 글로벌 기업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비알코리아에는 2021년 합류했다.

배스킨라빈스는 최근엔 보냉을 위해 스티로폼으로 제작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도 종이 상자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실장은 “미국에서는 이미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목표로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패키징도 단순히 종이 소재를 채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생분해 및 친환경 인쇄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