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분쟁·중동전쟁·이상기후 '삼중고' … 해운 운임 2년 만에 최고

中 기업들 관세 오르기 전 선적
예멘 반군 반년 넘게 홍해 점거
파나마 운하는 가뭄發 통행제한
SCFI지수 지난달 3000선 돌파
글로벌 해운 운임이 무역 분쟁·중동 전쟁·이상기후라는 ‘삼중고’로 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인상한다는 소식에 중국 기업은 수출을 서두르고 있고,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점거는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물류 통로 중 하나인 파나마 운하 역시 가뭄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 중국에서 미국·유럽연합(EU) 등으로 수출되는 물동량이 평년보다 크게 늘었다. 미국과 EU가 전기차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기 전 물건을 팔려는 중국 기업이 몰리면서다. 지난달 1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자동차 수출선박인 ‘SAIC 안지 이터니티호’에 자동차들이 선적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中 관세 우려에 물동량 폭증

9일 상하이해운교역소(SSE)에 따르면 지난 7일 상하이컨테이너운임(SCFI) 지수는 전주보다 4.6% 상승한 3184.87을 기록했다. 지난달 말 SCFI 지수가 2년8개월만에 다시 3000대를 돌파한 뒤 더 올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피트 컨테이너를 상하이에서 유럽으로 옮기는 운송 계약은 한달 전보다 1000달러 가량 오른 7000달러에 체결됐다.
최근 중국 업체들의 수출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국 항만에 컨테이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중국에서 미국·유럽으로 향하는 수출 물량은 여름 휴가철인 7월과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정점을 찍는다. 올해는 한달 가량 일찍 물동량이 급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초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등의 관세를 인상한다고 발표한 데다가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을 예고해서다. 상하이 소재 철강회사인 징한스테인리스의 고위 임원인 얀 준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로 제조업체들이 가능한 빨리 완제품 선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운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HSBC는 지난 3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소매업체 재고가 떨어지자 수입을 늘리면서 컨테이너 수요가 증가 추세”라고 분석했다.

○8개월째 이어진 홍해 리스크

지난해 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부터 지속되고 있는 홍해 리스크도 글로벌 운송망에 부담을 누적시키고 있다. 서방은 홍해에서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으로부터 상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크리스토스 스타일리아니데스 그리스 해운부 장관은 지난 4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지난 한 주 동안 공격 횟수와 강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유럽 주요 해운국인 그리스는 유럽연합(EU) 차원의 홍해 해상 작전을 주도하고 있다.

인터뷰가 보도된지 몇 시간 뒤 미 중부사령부는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대함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다음날 후티 반군은 홍해와 아라비아해에서 상선 3척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실시했다고 밝혔다.세계 2위 해운사 머스크는 지난 3일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항만 혼잡이 더욱 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운임이 치솟고 있다”며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는 한 강력한 가격 강세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홍해 사태 이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컨테이너선 운송은 약 80% 감소했다.

○양대 통로 파나마도 가뭄에 제한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양대 해운 통로로 꼽히는 파나마 운하는 가뭄으로 인해 통행이 제한됐다.

발틱국제해사위원회(BIMCO)의 필리페 구베이아 해운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드라이벌크(목재 곡류 등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싣는 화물) 선박이 전년 동기대비 74% 감소했다. 그 영향을 받은 배들의 항해 거리는 31% 증가했고, 물동량은 25% 줄었다.파나마 운하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 가툰 호수의 물을 이용해 배를 이동시킨다. 배가 진입하면 갑문을 닫고 담수를 빼거나 채워 다음 갑문과의 수위를 맞춘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동태평양을 뜨겁게 달군 엘니뇨의 여파로 가툰 호수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운하 수위는 지난 110년 역사에서 두 번째로 낮아졌다. 이에 파나마운하청(ACP)은 운행 선박 수를 제한했다.

다만 파나마에 우기가 돌아오면서 선박 통행량은 이전 수준을 점차 회복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파나막스급 선박의 일일 통과 횟수는 17회에서 24회로 늘었고, 지난 1일부터는 네오파나막스급 통과횟수도 7회에서 8회로 늘었다. 파나막스급 선박은 2016년 이전까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 네오파나막스급 선박은 2016년 6월 파나마 운하 확장 이후 최대 크기 선박을 말한다.

다만 운하가 아직 제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강우량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상화를 낙관하기 이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파나마 운행의 하루 최대 통행량은 총 38척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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