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선·손민수·임윤찬을 키워낸 세계적인 명문 음악대학 뉴잉글랜드 음악원

미국 동부 음악대학 탐구-뉴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왼쪽부터)손민수, 변화경, 백혜선 교수 /사진제공. 김동민
1997년 초,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오디션 투어를 다녔던 적이 있다. 당시 비올라 전공으로 미국 동부의 두 학교와 중부의 한 곳을 지원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보스턴에 있었다. 마침,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대학 선배의 주선으로 한국에서 온 2년 차 유학생 피아니스트를 소개받았다. 오디션 하루 전에 만나 리허설을 했고 다음 날 무사히 오디션을 마쳤다.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은 했지만 중부에 있는 주립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면서 그 학교와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4월 27일, 2년 차 유학생이었던 그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이 카네기홀에서 열렸다. ‘임윤찬의 스승’ 꼬리표를 뗀 담백한 손민수의 무대였다. 그는 시적인 상상력과 진실되고 사려 깊은 연주를 구사하는 연주자로 평가되는 아티스트이다. 27년 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와 호흡을 맞췄던 기억은 강렬했기에 이후 들려오는 그의 행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손민수 교수 /사진제공. 김동민
손민수는 이날 음악회에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É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을 연주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난곡으로 알려졌는데, 임윤찬이 지난 반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선 연주 직전 ‘러셀 셔먼 선생님께 헌정한다’고 밝힌 것이 화제가 되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러셀 셔먼은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던 그는 리스트의 ‘초절기교’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임윤찬은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스승 손민수를 통해 러셀 셔먼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보스턴 유학을 결정할 무렵 러셀 셔먼은 임종을 맞았다.

1900년대 중반부터 활약한 한동일과 백건우가 한국 피아니스트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알린 선구자라면, 백혜선은 1990년대에 등장해 2000년대 후반 김선욱, 손열음, 조성진, 선우예권, 그리고 임윤찬으로 이어지는 한국인 피아니스트 르네상스 시대의 선두에 선 인물이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비롯해 수많은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런던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내셔널 심포니, 뮌헨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라디오 필하모닉, 모스크바 필하모닉 등의 저명한 악단과 연주했다. 그리고 28세에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조단 홀 외부 /사진. ⓒAndrew Hurlbut
러셀 셔먼과 함께 백혜선과 손민수를 가르쳤던 사람은 변화경 교수이다. 그는 1966년 서울대 졸업 직후 곧바로 뉴욕행을 택했다. 유학을 마치면 미래가 보장되었던 변화경의 눈에는 뉴욕의 유명하다는 교수들이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에 저명한 교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가장 자신 있는 곡을 준비해 러셀 셔먼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와의 첫 만남은 기대와 예상을 빗나갔다. 변화경에게 돌아온 이야기는 칭찬도 특별한 가르침도 아니었다. 레슨 내내 이해할 수 없는 생경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지도교수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그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근본을 흔드는 변화가 이어졌고, 마침내 완고하게 버티던 그의 음악적 자존심은 무너졌다. 그렇게 러셀 셔먼의 문하생으로 맺은 인연은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변화경 교수 /사진제공. 김동민
손민수는 러셀 셔먼을 ‘저 너머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게 해 주신 분으로 회상했다. 그는 기술이나 기교의 연마보다는 관찰과 생각을 통한 훈련을 중요하게 여겼다. 음악을 정보의 습득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경계하고 학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백혜선은 반항기 시절,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러셀 셔먼의 가르침이 이해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그런데 그건 지난주 이야기잖아!”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백혜선은 러셀 셔먼 교수와 공부했던 시간을 ‘지나온 길을 냉정히 돌아볼 줄 아는 훈련’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는 제자들에게 매우 다양한 해석의 길을 제안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를 대할 때라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How do you know?’라는 질문을 던지며 선입견을 배제한 채 받아들이는 것은 셔먼 교수가 강조했던 가치였다.
백혜선 교수 /사진제공. 김동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뉴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NEC)은 1867년에 개교하여 올해로 157주년을 맞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대학이다. 미시간 주립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던 손민수가 교수로 임용되면서 스승을 따라온 임윤찬의 학교가 된 곳이기도 하다. 손민수는 NEC에서 1995년부터 10년 동안 러셀 셔먼과 변화경의 가르침을 받았다. ‘도레미’를 치는 법부터 다시 쌓아간다는 생각으로 기초를 다졌던 이곳은 그에게 있어서 커다란 세상이자 늘 동경하던 고향이기도 하다.

러셀 셔먼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면, 수많은 고비를 맞이했던 제자를 붙들어 준 스승은 변화경이었다. 백혜선도 손민수도, 선생님께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변화경 교수는 제자들을 뜨겁게 사랑했고 철저하게 가르쳤다. 두 스승이 아니었다면 벌써 피아노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NEC 피아노과에는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교수들이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198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인 베트남 출신 당 타이 손(Dang Thai Son)을 비롯해 13명의 교수가 있다. 1979년부터 재직하고 있는 변화경은 선임 교수이고, 백혜선은 서울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을 거쳐 2018년 NEC 교수로 부임, 현재는 피아노 학과장을 맡고 있다. 작년 가을 교편을 잡게 된 손민수까지 포함하면 한국인 교수는 3명이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조단 홀(JordanHall) /사진. ⓒAndrew Hurlbut
최근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더 나은 가르침을 찾아 외국 유학을 선택해 수년간 배움의 시기를 거친다. 학교는 개인의 기량을 닦고 경험을 쌓는 곳이기도 하지만, 멘토와 재능 있는 동료들이 만나고 인연을 맺는 장으로서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미국 내 주요 음악대학의 특정 분야에 한국인 교수가 집중되어 있는 경우는 NEC가 거의 유일하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NEC는 남보다 더 잘 치는 ‘피아노쟁이’가 아니라 전인격적 음악가를 길러내는 것을 지향한다. 올해로 45년째 가르치고 있는 변화경 교수는 콩쿠르의 진정한 가치는 매겨지는 순위가 아니라 오랜 노력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가치는 미국 유력 일간지 보스턴글로브가 러셀 셔먼을 가리켜 ‘상업적 논리나 트렌드에 휘둘리는 음악시장의 유혹에 저항한 진정한 예술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를 지닌 사색가’라고 묘사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사진제공. 김동민
흠 없는 매끈한 연주를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소독약을 치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유기농으로 일궈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백혜선 교수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원칙은 학생에게도 직업 연주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막내 교수가 된 손민수는 러셀 셔먼이 뼈를 깎는 노고로 키워낸 선배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 큰 선물이라 말하며 감회에 젖었다. 학교에서 손민수의 연구실은 학생 시절 항상 드나들던 변화경 교수실 바로 옆이다. 동경해 왔던 대상과 함께 후학들을 돌보는 동료의 자리에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학교에 다니던 시기를 지나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백혜선의 평가는 고무적이다. 이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눈앞의 1등이 아니더라도 연습의 효과와 능률이 극대화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NEC 신입생 오디션에는 세계 각지에서 600여 명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지원했다. 몰려든 인재를 선별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은 길고 진지하게 이어졌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그것을 잘 드러날 수 있도록(draw out) 책임을 다하는 것은 NEC 피아노과의 컬처가 되었다.

깊이 내린 닻을 따라 심연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은 한 길이지만, 한 길로 가서는 안 되는 여정이다. 이 여행은 ‘아름다운 사운드’가 아닌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르친다. 별이 된 거장의 뜨거움은 다음과 그다음이 이어받는다.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깊이 존중되고 용납되는 거룩한 성소, 그 심연을 향해 빛나는 젊음이 달려간다.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사진제공.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