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돈 밝히는 의사' 누명쓰지 않으려면

환자보다 후배 안위 챙기는 의사
현장에 남아 환자와 신뢰 지켜야

허세민 경제부 기자
“국민들이 의사는 무조건 꼴 보기 싫다고 합니다.”

지난 9일 대한의사협회가 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방재승 전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환자만 봤던 교수 입장에선 너무나 억울하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정부의 ‘잘못된’ 의대 증원에 저항하다 ‘돈만 밝히는 의사’로 매도되고 있다는 것이다.방 전 위원장이 억울함을 호소한 이날, 의협은 정부가 의대 증원 결정을 백지화하지 않는다면 오는 18일 집단휴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서울대병원에 이어 동네 병원도 문을 닫겠다는 것이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의협 결정에 따라 18일 하루 휴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를 향한 분노와 억울함이 터져 나온 이날 회의에선 환자와 국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국민 담화문, 대회사 등이 한 시간 반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국민 여러분,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의협 대변인의 한마디 언급만 있었다. 이마저도 “이 모든 것(집단휴진)은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변명했다.

환자들은 이런 의사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의협 발표 직후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만난 40대 환자 이모씨는 “환자인 동시에 근로자로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가도 국민의 생명을 협상 카드로 쓰는 걸 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국민과 환자들의 불편보다 후배 의사의 안위만 챙기려는 모습도 국민을 화나게 한다. 의협은 이날 “모든 불이익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전공의들을 위해 의사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정 갈등 속에 100일 넘게 불편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억울함은 뒷전이 된 모양새다. 전공의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행정처분을 완전히 취소하고, 의대 증원을 없던 일로 하라는 의사 선배들의 주장은 의사에 대한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친다.

병원에서 만난 60대 환자 배모씨는 의료계 집단휴진 예고에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씨는 모든 의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구미에서 힘들게 올라왔는데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다”며 자신을 치료해 준 의료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의사가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병원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의료계 집단휴진이 구호로만 끝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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