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내 '샤넬 백' 단종될 수도"…업계 '발칵' 뒤집힌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48회

샤넬 패션하우스 수장 비아르 해임

"라거펠트식 디자인 끝났다"
샤넬, 새로운 변화 맞을까
샤넬 패션하우스의 수장 버지니 비아르. 사진=WWD
"나의 오른팔이자 왼팔“

‘샤넬 제국’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고(故) 칼 라거펠트가 최근까지 샤넬 패션하우스의 수장이었던 버지니 비아르를 두고 생전에 했던 얘기다. 이처럼 라거펠트가 총애했던 그의 후임자 비아르가 샤넬을 떠난다는 소식이 지난 6일 공식적으로 전해졌다.2019년 샤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된 지 5년 만이다. 샤넬은 그의 사임을 밝히면서 정확한 사임 시점과 후임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글로벌 패션업계는 깜짝 놀라는 분위기다.

라거펠트가 198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무려 36년간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를 지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의 사임이 경질에 가깝다는 분석도 퍠션계에서 나온다. 분명한 건 샤넬이 ‘라거펠트 시대’부터 이어온 정체성에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는 점이다. 포브스는 ”샤넬이 창작 방향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로이터는 "샤넬이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했다.


라거펠트 심복 비아르의 '깜짝 사임', 왜

비아르의 패션 경력은 대부분 라거펠트와 함께였다. 프랑스 리옹의 패션 학교에서 영화와 연극 의상을 전공한 그는 1987년 샤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엔 라거펠트가 있던 끌로에에 합류했다가 다시 샤넬로 돌아오는 등 수십 년 동안 라거펠트 곁을 지켰다.라거펠트가 디자인 스케치를 하면 비아르가 옷을 만들고 모델 캐스팅을 하는 등 공방과 아틀리에를 총괄하는 역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라거펠트는 “비아르는 나뿐만 아니라 샤넬 하우스 전체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라거펠트의 생전에도 그의 후임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여러 스타 디자이너들이 라거펠트 뒤를 이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결국 샤넬의 선택은 비아르였다. 2019년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샤넬은 비아르를 패션하우스 새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때 샤넬은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거펠트의 유산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비아르를 후임자로 임명하게 됐다”라고 밝혔다.비아르가 샤넬의 컬렉션을 감독하는 동안 실적은 크게 개선했다. 그가 CD로 재임하는 기간에 샤넬의 매출은 연 197억 달러(약 26조9000억원)에 달했다. 패션 사업만 놓고 보면 2.2배 성장했다.
(왼쪽부터) 칼 라거펠트와 버지니 비아르. 사진=WWD
하지만 디자이너로서는 재임 기간 내내 라거펠트의 그늘에 가려졌다. NYT는 "비아르는 라거펠트의 보좌역 이상으론 자리매김하지 못했다"며 "샤넬을 더 젊게 만들고 효율성을 추구하려 했지만 그런 노력은 실패하곤 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비아르는 라거펠트의 장난기 넘치는 느낌을 유지하고자 전통적 샤넬 엠블럼에 기발한 변형을 실험했다”면서 “그녀의 컬렉션은 패션 언론의 평가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서 했던 최근 패션쇼에 대해서는 특히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다음 샤넬 패션하우스 수장은

패션계는 비아르의 후임으로 샤넬의 수장이 누가 될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셀린느의 CD 에디 슬리먼이 샤넬의 패션하우스를 맡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슬리먼은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2018년에 셀린느의 CD로 발탁돼 5억 유로였던 셀린느의 연 매출을 25억 유로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곧 셀린느와 계약이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렌티노에서 오랫동안 CD로 일했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도 거론된다. 지난 3월 전(前) 구찌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에게 자리를 넘겨준 후 아직까지 직함이 없다. 루이비통 여성복 CD인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 등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일부에선 샤넬이 아예 당분간은 CD 없이 패션하우스를 운영할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샤넬이 전 세계적으로 입지를 강력하게 다진 덕에 특별한 감독 없이도 브랜드 인지도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루이비통이 2021년 버질 아블로가 사망한 후 남성복 CD를 1년 넘게 공석으로 비워둔 사례가 있다. 크리스찬 디올도 존 갈리아노나 라프 시몬스가 자리를 비운 후에도 컬렉션을 안정적으로 선보인 바 있다.


"라거펠트 시대의 종말"

샤넬의 지난 1월 런웨이. 사진=SNS 캡처
“라거펠트 시대의 종말.”

글로벌 주요 패션지들이 비아르 해임을 두고 평한 내용이다. 후임이 누가 오든, 혹은 아예 오지 않던 간에 샤넬의 디자인은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리나 나이르 샤넬 대표(CEO)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샤넬은 경영과 창의적 방향성 등 모든 측면에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샤넬은 Z세대가 다음 고객이 될 때를 대비해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을 잡아야한다고 보고 있다. 샤넬의 선호도가 여전히 강하긴 하지만,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샤넬의 가격 인상 정책에 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샤넬 내부에서도 강력한 ‘경고 신호’로 인식된다. 나이르 대표는 “시그니처 제품인 클래식 미디엄 백의 가격이 1만 달러(약 1300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비싼 가격을 납득할 만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샤넬의 생각이다. 라거펠트의 유산을, 더 나아가서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정체성을 답습하는 정도의 디자인으로는 새로운 세대를 제대로 공략하기 어렵다는 게 샤넬의 입장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제이콥 갤러거는 “비아르는 코코를 쫓던 라거펠트를 쫓았는데 이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새 고객을 끌기는 어렵다”며 “코코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계속 그 정체성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현대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런 의도가 현실화한다면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샤넬 제품의 리셀가는 당분간 상승할 수 있다는 게 명품·패션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샤넬의 디자인 방향성이 바뀌면 일부 제품이 단종 수순을 밟게 될 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라거펠트의 철학히 고스란이 담긴 디자인의 제품이 희소성이 커지면서 리셀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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