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고미술 경매담당하는 뉴욕의 일본인 "백자 인기 높아질 것"

세계 양대 경매사 크리스티
한국 고미술 부서 헤드
타카아키 무라카미 인터뷰

"20년 전 대학 시절 고려청자에 반해
한번도 본 적없는 아름다움이 있어

달항아리 456만달러에 낙찰된 일이
가장 인상 깊었던 거래죠 "
지난해 3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장에서 진행된 달항아리 경매 현장. 크리스티코리아 제공
456만달러(약 62억8000만원). 지난해 3월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세워진 조선시대 달항아리(moon jar)의 역대 최고가 낙찰 기록이다. 평소 미술품 경매 소식을 잘 전하지 않던 국내 언론의 뉴욕 특파원들도 당시 낙찰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한국 고미술에 대한 세계 시장의 평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대급 경매’ 뒤에 한 일본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명한 곳은 없었다. 크리스티에서 한국 고미술 작품의 조달 및 연구, 전시 제작, 마케팅, 맞춤형 판매 전략 등을 총괄하는 ‘한국 고미술 부서 헤드’, 타카아키 무라카미(44)였다.일본인인 그가 어떤 계기로 한국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일본인이 세계적인 경매사의 한국 고미술 담당자가 된 사연은 뭘까.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는 어떤 한국 고미술품이 인기를 끌까. 서면 인터뷰를 통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질문들을 던졌다.
타카아키 무라카미 한국 고미술 부서 헤드 및 스페셜리스트.
▶어쩌다 한국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20년 전쯤 대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도쿄 국립 박물관에서 고려시대 청자를 처음 보게 됐습니다. 작품을 보자마자 유약의 그 순수한 아름다움에 푹 빠졌지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한국 고미술품 중에서 고려시대 청자를 가장 좋아해요. 일본 수집가들 중에서도 저처럼 고려 청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고려 청자는 일본 수집가들이 과거부터 항상 동경해온 도자기였지요.”

▶일본·중국의 도자기와 느낌이 어떻게 달랐나요.
“한국 도자기는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의 근본이 담겨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아름답고 소박하면서도 장식성이 뛰어난, 한국 고유의 미적 정수가 담긴 유물이 바로 한국 도자기라고 생각합니다.”▶원래 고미술에 관심이 많았나요.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미술에 대한 애정이 컸습니다.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하셨고 일본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셨거든요. 그러다 크리스티 도쿄지사에서 근무하게 됐고, 2011년부터 미국 뉴욕 지사에서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고미술 부서 헤드를 맡게 된 건 2014년으로, 올해가 꼭 10년째입니다.”

▶사실 가장 묻고 싶었던 건, ‘왜 일본인이 한국 미술품 담당자가 됐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적잖은 한국 고미술품이 일본에 있습니다.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에 있는 한국 도자기 컬렉션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좋은 작품을 갖고 있는 일본인 개인 소장가들도 많습니다. 2022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독서당계회도, 지난해 뉴욕 경매에 나왔던 달항아리 모두 일본 소장가가 출품한 작품이니까요. 저는 이런 작품을 경매시장으로 끌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 고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앞으로 팀의 규모가 커진다거나 여러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요.”
2022년 일본 소장가가 크리스티 경매에 내놨던 독서당계회도는 국가유산청이 사들여 국내로 들여왔다. 당시 국가유산청이 국내로 환수한 독서당계회도를 소개하는 모습. 뉴스1
쉽게 말하자면 경매에 나오는 한국 고미술품 중 상당수가 일본 소장가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한국에 있는 최고 수준의 유물들은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요 박물관 소장품이라 경매에 나올 일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는 이유다.▶한국 고미술품 담당자로서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말씀드렸듯이 경매 출품작을 구하고, 추정가를 매기고,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를 합니다. 고객들도 만나고요. 그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누빕니다. 카탈로그를 만들고 경매 프리뷰 전시를 준비하는 일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 고미술품 경매와 관련한 거의 모든 일을 총괄합니다.”

▶한국 도자기를 처음 접한 고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운 형태와 깨끗한 단색을 좋아하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최근 달항아리가 인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둥글고 수려한 모양, 순수한 아름다움과 담백함이 전 세계에 통한 거지요. 한국 도자기를 선호하는 분 중에서는 서양 고객들이 많은데, 특히 미국에서 인기입니다. 미국의 개인 컬렉터와 미술관 모두 최근 한국 고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당시 낙찰된 높이 451cm의 달항아리 크리스티코리아 제공
▶판매를 성사시켰던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뭔가요.
“역시 지난해 3월 456만달러에 낙찰된 달항아리를 빼놓을 수 없곘지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중요한 개인 컬렉터들이 응찰을 하면서 예상 낙찰가(100만~200만달러)를 훌쩍 넘겼는데, 아주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020년 9월 경매의 호렵도, 2018년 4월 경매의 분청사기 편호, 2016년 4월 경매의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가 낙찰되던 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아시아 고미술품 시장에서 한국 고미술품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요.
“아직까지 거래량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경매에 나오는 작품들의 경우 높은 퀄리티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고미술품 시장은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특히 백자는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더 큰 인기를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자의 매력은 사전 지식이 없는 고객들도 단번에 사로잡곤 하거든요.

고미술품에는 자연을 닮은, 변치 않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번잡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종류의 아름다움이지요. 한국의 고미술품은 이런 점에서 완벽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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