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is 뭔들"…27년 만의 연극, 이유 있는 자신감 [인터뷰+]

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 배우 전도연
/사진=LG아트센터
연극배우로 돌아온 전도연이 연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견해를 털어놓았다.

전도연은 1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벚꽃동산' 인터뷰에서 "연기를 잘한다고 뽐내고 싶었다면 연극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첫 공연을 앞두고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작품. 러시아 혁명 직전의 귀족가문이 어이없이 몰락하는 모습을 애잔하면서도 통쾌하게 풀어낸 이야기를 현대 한국의 재벌가로 옮겨와 재해석했다. 전도연은 재벌 3세 송도영 역을 맡았고, 박해수는 선대 회장 운전사의 아들이었던 황두식 역에는 박해수가 캐스팅됐다. 지난 4일 개막해 7월 7일까지 30회의 공연 기간 동안 '원 캐스트'로 관객들을 만난다.

연출을 맡은 호주 국적의 사이먼 스톤은 고전의 재해석에 재능을 발휘해 왔다. 그는 한국 배우들과 작업을 위해 '벚꽃동산'을 선택했고, 전도연을 포함해 출연할 10명의 배우들과 워크숍과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대본을 집필했다.

전도연은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벚꽃동산'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상연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지만 "역시 전도연"이라는 찬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전도연은 "저도 실수를 한다"는 솔직한 고백과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목표"라는 현실적인 발언으로 품격이 다른 배우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LG아트센터
다음은 일문일답

▲ 딱 일주일됐다. 무대에 오른 소감이 궁금하다.

아직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아마도 공연이 끝날때까지 그럴 거 같다. 무대 위에서 익숙함은 저에겐 앞으로도 없을 거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긴장감은 있지만, 그런 것들을 즐기고 있는 거 같다. ▲ 제작발표회 당시 '사이먼의 연극을 보고 끓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원작 책을 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다. 연출자가 사이먼이라는 얘길 듣고, LG아트센터 쪽에서 사이먼의 작품 '메디아'가 국립극장에서 스크린으로 상연된다는 얘길 듣고 보러가게 됐다. 거기서 '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나오는 배우들이 부럽고, 나도 하고 싶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 연기를 하면서 피가 끊은 순간이 있나. 그렇다기 보단, 좋은 배우들이 제가 '메디아'를 보고 느낀 것과 같은 감정을 경험했다고 얘기해 줄때, 내가 느낀 걸 제 무대를 보고 느끼는 게 감사했다. 피가 끓고 뭘 하기엔 제가 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도 이 작품을 객석에서 보고 싶더라. 저 뿐 아니라 배우들끼리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 1997년 '리타 길다리기' 이후 연극 제안도 있었을 거 같은데, 왜 응하지 않았을까.

있긴 했다. 그런데 너무 어둡고, 무겁고, 재미 없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제가 뭘 하는지는 알고 해야하니까. 그래서 계속 고사를 했다.

▲ 첫 공연 당시 '죽고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무대 오르기 전이었다. 이 시간에 누워서 넷플릭스 볼 시간인데, 왜 이러고 있나.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익숙하게라도 정신없이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해내고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는 격려를 많이 들으면서 첫공연을 마쳤다.

▲ 무대 위에서 전도연도 실수를 할까.

물론이다. 대사를 한줄 정도 빼먹었다. 분명 제 대사를 다했다고 했는데, 그 순간 실수를 몰랐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조금씩 있다. 그런데 사이먼이 처음 연출을 할때 '실수를 하라',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라'고 하더라. 배우들은 실수를 두려워하는데, 사이먼은 실수로 나오는 새로움을 연출 의도중 하나로 갖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배우들끼리도 끈끈했다. 제가 무대에 오르는게 오랜만이라 긴장이 컸는데, 다른 배우들도 '실수해도 돼'라고 해서 든든하고 뭉클했다. 편하진 않았지만 신뢰감이 있었다. 대사를 빼먹기도 하고, 박해수 씨도 굉장히 많은 대사를 빼먹었는데, 정말 능숙하게 다시 자기 대사를 하더라. 그런 걸 보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 도영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이해가 안된건 나의 상처, 고통, 아픔을 딸들에게 고스란히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거다. 납득이 안됐다. 어떤 아픔, 상처 이런 걸 보이고 싶지 않은게 엄마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 아픔, 치부도 자식들도 알지 않나. 저도 겪고 있고, 저의 딸도 겪고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어떤 관객이 '우리 엄마와 닮아있다'고 하더라. 속으로 '큰일났네' 생각했다.(웃음) 아마도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감당해야 하는 순간일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 벌써 '역시 전도연'이란 반응이다.

'전도연 is 뭔들' 아닌가.(웃음)어느 순간 전도연이 연기를 잘한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다. 하지만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제가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릴 땐 상 받으면 칭찬받는 거 같고, 그게 좋기도 했다. 그러다 이 작품을 내가 얼마만큼 받아들였는지,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뽐내고, 보여주려고 했다면 무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무대 위에선 온전히 내던져야 하니까. 나를 내던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역시, 잘하더라' 이런 얘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서 그런건 자극이 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 음주 연기가 많더라. 연습 때 많이 먹었을 거 같다.

술 마실 때 에피소드는 술 마시면서 해야하는데.(웃음) 다행히 배우들이 다들 술자리를 좋아하고, 그걸 통해 많이 친해졌다. 술자리에서 내가 뭘 느끼는지 말하면서 솔직해질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개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친밀감이 형성된 거 같다. 다들 노래방 가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춘다. 흥도 많더라.

▲ 낯뜨거운 대사도 있었다.

사이먼이 봤을 때 '내가 이런가' 싶었다. 사이먼이 대본이 늦게 나와도 '너희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에 전혀 불편하지 않을거야'라고 했다. 그러고 제 대사를 보고 '나를 어떻게 봤기에 이런 모습을 봤을까' 싶더라.(웃음) 원작과 제 모습의 공통된 부분을 가져온거 같다. 사랑스러움으로 표현한 거 같다. 사이먼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달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제가 어떻게하면 납득시킬수 있을지를 말한다면 그게 사랑스러움이 아닌가 싶다.

▲ 원캐스팅에 대한 부담은 없나.

더블 캐스팅 생각을 못했다. 27년만이다보니까. 아프면 어떡하지, 목소리 안나오면 어떡하지, 그걸 뒤늦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엔 체력관리 열심히 잘해서 해보고, 다음에 뭔가 하면 더블캐스팅을 하려한다.

▲ 연극을 하면서 연기에 또다른 재미를 느낀 부분이 있을까.

해소가 되고 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이 무대에서 배우들과 함께 연기할 때는 너무 즐겁다.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는 거 같다. 카메라 앞에서 잘한 모습만 편집돼 나오는게 아니라 새롭다. 그리고 주변에서 제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부분이 감사하다.

▲ 연극에 오르기 전 기대했던 부분은 많이 이뤄냈을까.

그 이상이다. 제 머리속으로는 여기까지 아니었다. 무대로 옮겨진 세트를 공연 열흘 전에 봤는데, 놀랍고 기대됐다. 제가 생각한 거 이상이었다.

▲ '일타스캔들'부터 '길복순', '벚꽃동산'까지 모녀 관계가 드러나는 작품을 하고 있다.

제가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다.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희 엄마를 보면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그냥 엄마가 되는거라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정작 뭘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저 자체도 불완전한 인간인데, 어떻게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지, 그 가르침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자고. 그래서 전 제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얘기한다. 딸이 5살인가 저에게 '왜 엄마는 나한테 맨날 미안하다고 해?'라고 하더라. 그런데 미안하다. 화를 내는 것도, 얘가 진짜 잘못해서인지, 제가 화가 나 그런건지 모르겠고. 지금도 스스로 찾아가고, 아이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딸은 이전부터 보면 제가 나오는 건 낯뜨거워 잘 못보겠다고, 창피하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제가 하는 일을 응원하고, 도와주려 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지내고 있다.

▲ '벚꽃동산'에서도 친구같은 모녀의 모습인데, 실제로도 그럴까.

싸우면 문자보내고, 편지보낸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한다.

▲ 사이먼 스톤의 '벚꽃동산'은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보나.

사실 그게 궁금했는데, 정확한 답은 듣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가 오길 바라지만, 각자의 이상향은 다르지 않나. 그래서 서로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 이상을 관객들이 생각하도록 남겨놓도록 하는 거 같다. 각색의 지점도 새로운 게 많다. '벚꽃동산'이라는 이름아래 새로운 작품이 된 게 아닌가 싶다.

▲ 전도연의 새로운 세상은?

저도 왔으면 좋겠지만 모르겠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공기도 더 좋았으면 좋겠고, 마음껏 공기를 들여마셨으면 좋겠다.

▲ 전도연에게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2013년에 '집으로 가는 길'을 할때 제가 할 수 있는 연기가 많지 않았다. 그때, 그 시간을 보내고 동력을 잃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보면 내가 나를 좀 더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칸에서 상도 받고, 90년대 영화 황금기도 보냈고, 앞으로 뭘 해야한다는 건 욕심을 부리는게 아닌가 싶더라. 그래서 제가 자신을 내려놓았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런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게 많아지면 욕심이고. 제가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하는 거니 생각의 변화를 가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꿈이 배우가 아니었고, 목표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배우 일을 하고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지금은 언제까지 배우를 할 지 모르지만, 계속 일을 하는게 목표가 됐다. 이 일을 하는 시간 자체가 목표이기에 동력은 제 안에 있고, 새 자극과 목표에 대한 욕심은 없다.

▲ 또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LG아트센터에서 또 러브콜을 받았다. 다른 작품도 해보고 싶다는 얘긴 했다.(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