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는 월선이 비단옷 입는 것도 싫었다, 기생집 온 것 아니다며

[arte] 손태선의 발레 화가의 서재
박경리 두 번째 이야기
<토지> 5~8권 / 사진. ©손태선
▶▶▶(토지, 첫번째 이야기) 봉순네는 짐승 같은 직감으로 귀녀의 임신 사실을 알아채지

모든 소설이 그렇듯 사랑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주인공 서희의 사랑 못지않게 절절한 것이 용이와 월선의 사랑이다. 용이라는 인물은 존엄성을 허물지 않는 대장부이지만 신분차이로 사랑하는 월선과 헤어져 강청댁과 결혼하지만 정을 못 붙이고 아이도 없이 살아간다. 조강지처를 박대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월선을 바라보고만 산다.

최참판댁 살해 사건으로 살인자의 아낙이 된 임이네를 연민과 동정으로 돌보아 주다가 일시적 충동으로 임신시킨다. 임이네가 그의 아들을 낳자마자 강청댁은 호열자(콜레라)로 죽고, 월선과 재회하지만 아들을 낳아준 임이네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두 여자를 거느리고 살아간다.

무당의 딸인 월선은, 용이하고 살 수 없다면 애꾸눈이건 절름발이건 상관이 없는 여인이다. 용이와 월선은 내내 이렇게 안타까운 사랑만을 나눈다. 만나는 순간마다 새롭고 전부였고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고, 기다리는 동안의 몸서리쳐지던 고통은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 용이는 월선이 비단옷을 입는 것도 싫어했다. 내가 기생집에 오입하러 온 줄 아느냐 하며 노골적으로 힐난한 일도 있다. 처음에는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옛날 정리를 생각하며 마지못해 찾아오기는 오지만 젊고 예쁜 임이네, 늦게 본 첫 자식에 대한 정이 깊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의 오기 탓이며 월선에게 할 짓을 못한다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월선이는 자신에 대한 용이의 ‘불안과 대상도 없는 막연한 질투심’도 곁들여져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편 임이네는 용이와 칠성(살인자 남편)을 비교해 본다. 용이의 말투는 늘 애매하였다. 말을 놓는가 하면 어떤 때는 칠성이 아낙이었던 시절처럼 공대를 하기도 했다. 반면 칠성은 무지막지했던 사나이, 인색하기 짝이 없던 사나이, 그러면 임이네 역시 미련스럽게 어거지 떼를 쓰며 버릇없이 굴어도 허물이 되지 않았었다.정은 없었으나 부부로서 틈이 있고, 사이가 멀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생활을 위한 의욕이 있었고, 그것은 무지막지한 대로 살을 비벼대는 것 같은 밀접한 유대였던 것이다. 용이는 부드럽고 자상하며 인색하지 않았고 여자를 위해주는 성품이다. 욕설을 입에 담은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말이 없는 용이를 대할 때면 임이네는 냉랭한 바람받이 속에 서 있는 것 같았고 먼 거리에서 한발로 운신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리움의 그림 ©손태선
너하고 나하고는 시작도 못하고 내가 늙어버린 것 같다... 용이가 월선에게 하는 말이다.
감정의 억제가 일상이었으니...

헤어져 있고 범상한 남녀의 관계도 맺지 않았으나 어디서든 마음으로 지켜주는 눈이 있다는 것은 삶에의 의지가 된다.[다음 회에 계속]

손태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