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ICC, 이스라엘 총리 체포영장 청구
국제 여론과 '법률전' 중요성 커져

박희권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법의 공정성은 법치국가의 근본 원리다. 모든 사람은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법 앞에 평등하다. 분쟁은 힘이 아니라 법 규범에 따라 해결되며, 법원의 결정은 국가기관이 집행한다. 그러나 통일적 권위와 현실적 규범력을 결여한 국제사회의 법질서는 판이하다. 권력정치(power politics)를 본질로 하는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은 강대국의 의사를 반영하고 국제관계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대부분 분쟁은 국가 간 상대적 힘의 크기에 좌우된다. 국제법 위반 여부를 결정할 유효한 메커니즘이 없고 국제법원의 결정은 실효성과 강제성에서 취약하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국제사회의 현실에 도전하고 나섰다. 5월 20일 카림 칸 검사장은 하마스 지도자 3인과 함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국제법과 무력분쟁법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칸 검사장의 결정이 국제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ICC의 암묵적 행동규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새로운 반유대주의”라고 맹비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영국 독일 등 이스라엘 우방국들은 ICC를 비판했으나 프랑스 벨기에 중국 튀르키예 등 많은 국가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기 위해서는 ICC 전심재판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또한 영장 청구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주는 충격과 정치적, 법적 함의는 막대하다. 우선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응은 하마스 무장세력의 기습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였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자 하마스 공격에 분노한 국제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했다. 5월 24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청을 인용해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ICC와 ICJ의 결정은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하고 정치적 압력을 가중할 것이다. 유럽과 이스라엘 간 균열도 커지고 있다. 5월 말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가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 것이 이를 웅변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124개 ICC 회원국은 ICC 규정과 국내법상 절차에 따라 이를 집행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총리의 국제적 행동반경과 정치적 입지는 위축될 것이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8월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불참한 것이 대표적 예다. 최근 범죄 장소, 범죄자나 희생자의 국적과 관계없이 인권 침해에 대한 보편관할권 행사가 증가하고 있어 서구권 여행이 제한될 것이다.유엔은 자위권 발동을 제외한 일반적인 무력 행사를 금지했다. 자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필요성과 비례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2002년에는 ICC가 설립돼 국가 책임과는 별도로 심각하고 중대한 국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국제법 준수 여부는 군사행동의 정당성과 국제 여론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많은 나라가 전쟁(warfare)과 대비되는 법률전(lawfare)을 전개하는 이유다.

북한의 무차별적 도발에 노출된 한국은 법률전을 선제적,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타국이 우리의 대응을 문제 삼을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군사행동 못지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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