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사업장 퇴직연금 의무화 추진, 강제보다는 자율로 가야

정부가 내년부터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2012년 7월 26일 이후 설립된 사업장에는 퇴직연금 도입이 의무화됐지만, 그 이전에 설립된 곳은 퇴직금이나 퇴직연금 중 하나만 시행하면 된다. 이런 탓에 제도가 시행된 지 20년이 됐지만 가입 사업장은 전체의 26.8%(2022년 말 기준)에 그친다.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도입한 뒤 30인 이상~100인 미만은 법 시행 후 2년 이내,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은 6년 이내로 순차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제도 도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중소·영세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퇴직연금은 사내에 적립하는 퇴직금과 달리 사용자가 퇴직급여 재원을 금융회사에 적립·운영하고 근로자 퇴직 시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유동성이 부족한 업체가 대량의 내부 기금을 갑자기 외부로 빼내면 차입금이 늘고, 위기 발생 시 대응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0인 이상 사업장 중 70.5%가 퇴직연금에 가입한 반면 5~9인 사업장의 도입률은 30.0%, 5인 미만 사업장은 11.9%에 머무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을 만들고 서둘러 강제하면 역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자율 도입을 유도해야 한다.

연금성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지금은 퇴직연금을 직장생활 중 주택 마련, 자녀의 결혼 비용 등으로 써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55세 이상이 돼 퇴직연금을 정상 수령할 때도 연금 방식 대신 일시금 지급을 택하는 비중이 92.9%로 압도적이다.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2.1%에 불과해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3대 노후보장 체계의 한 축으로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주요인이다. 네덜란드, 싱가포르가 연금 수령을 강제하고 미국은 일시금 인출 시 중과세를 적용하는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올해 4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수익률은 연평균 2.35%에 그쳐 ‘쥐꼬리’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선 빈약한 수익률 제고 방안 역시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