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100만원"…무인점포, 절도 늘자 '합의금 장사'

전국 무인매장 수 10만개 이상
청소년·노인 소액절도도 급증세

일부 업주 "합의하자, 변상하라"
한두 번만 받아내도 한달 매출
경찰에 방범 떠넘기고 범죄 방치
점원 없는 무인점포에서 청소년과 노인의 소액 절도 사건이 급증한 가운데 이들에게 고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부 점주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훔친 미성년자 절도범을 경찰 도움으로 찾아낸 뒤 부모에게 ‘학교에 알리겠다’며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식이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소규모 범죄를 선처해주는 경미범죄심사위원회의 심사 건수는 8273건으로 2021년(7759건)에 비해 514건 늘었다.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어난 건 코로나19 시기 우후죽순 생겨난 무인점포에서 벌어지는 소액 절도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사회적 약자가 일으킨 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서 선고형 20만원 이하 초범이나 ‘생계형 범죄’로 분류되면 경미범죄에 해당하고, 처분을 감경받을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소액 범죄가 늘었다는 의미”라며 “무인점포에서 절도 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처벌 전에 합의에 이르는 사례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소방청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무인점포를 6322개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치일 뿐 실제로는 10만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점포는 인허가 없이 사업자 등록만 하면 영업이 가능한 데다 카페, 계란 할인점, 옷 가게 등 다양한 업종에서 생겨나고 있어서다.일선 경찰관은 “무인점포 때문에 치안 공백이 생길 정도”라고 호소했다. 서울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매일같이 80대 노인의 과일 2000원어치 절도 사건 등이 접수되는데,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절도범 CCTV 동선을 파악하는 등 수사에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업주가 ‘합의금 장사’를 점포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절도범이 미성년자이면 경찰의 도움으로 부모에게 연락해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14세 이상 중·고등학생에게 학교 통보를 압박하며 물건값의 최소 10배에서 최대 수백 배의 합의금을 받아낼 때도 많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매일 경찰서에 사건을 가져오고 합의해 공갈·협박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되는 업주도 있다”고 전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무인 할인점은 ‘초등학생 절도범에게 합의금 100만원을 받아냈고, 중학생을 형사고발 조치했다’는 식의 경고 문구를 써 붙여놓기도 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제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나 가난한 고령자는 감시자가 없는 환경에서 절도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며 “무인점포에 출입 신분 인증 기기를 의무적으로 달게 하는 등 경비 시스템을 강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다빈/정희원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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