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럽 민심 이반시킨 과도한 환경규제

닭장 너비와 기울기까지 간섭
'환경 광신주의' 논란 불러

이현일 국제부 기자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한다는 방침은 실수입니다.”

10일(현지시간)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이날 만프레트 베버 유럽국민당(EPP) 대표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매체는 EPP가 엄격한 환경 규제로부터 농업 분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지난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EPP는 1당의 자리를 굳히긴 했지만 강경 우파 정당의 급부상도 함께 목격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임기가 3년 남은 자국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고, 벨기에에선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프랑스 등 주요국 정부가 수세에 몰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친환경 정책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연합(RN)이 주도한 정체성과민주주의(ID) 연합, 유럽보수와개혁(ECR) 연합, 독일 독일을위한대안(AfD) 등이 도합 약 20석 늘렸다. 이 숫자는 각국 환경주의 정당 연합인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이 잃어버린 18석과 거의 일치한다. 관광명소에 몸을 접착하거나 스프레이를 뿌리는 과격한 시위 방식으로 논란을 일으킨 독일 ‘마지막 세대’와 같은 친환경 표방 정당들은 유권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유럽연합(EU)이 농업 부문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막는다며 2030년까지 질소비료 사용 감축, 휴경 의무화, 살충제 사용 제한 등의 규제를 강화하자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시위에 나섰다. 당시 영국 더타임스는 “프랑스의 양계 농가에 대한 규제집 분량이 167페이지”라며 “닭장의 최소 너비, 바닥 부분 기울기, 다락문 크기, 들판 울타리까지 규제한다”고 꼬집었다.이번 선거에서 프랑스는 파리 등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표가 야권으로 넘어갔다. 독일에선 올라프 숄츠 정부의 연정에 참여한 녹색당을 비롯한 녹색당-유럽자유동맹 산하 정당 의석이 25석에서 16석으로 급감했다. 독일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화력발전소도 줄인 탓에 작년 한 해 주택용 전기요금이 전년 대비 83% 급등하면서 서민들이 등을 돌렸다. 이탈리아에서 다수당 자리를 탈환한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 과정에서 “기후 광신주의에 저항하자”고 줄곧 외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 ‘2050 탄소중립’을 밀어붙인 한국에도 이번 선거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에너지 빈국이고, 태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입지 여건이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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