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도 '손절'한 한국…'블록체인'이 구할 수 있을까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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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축소하기로 한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방증한다. 10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우리나라 최대 투자집단이 국내 주식 시장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국내에 유망한 기업과 산업 자체가 부재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증시 거래대금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내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자금이 계속 이탈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인공지능 테마나 '대왕고래' 테마 주 등이 있긴 했지만, 한국가스공사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조차 물량을 개인들에게 대거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개인투자자들 역시 국내 주식보다 미국 주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한때 '서학개미'라 불리며 유행했던 해외주식 투자 열풍이 일상화되면서 더 이상 특별한 호칭조차 없어졌다. '불로소득'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증시는 세계는 물론 국내 투자자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이는 실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리아 넘버원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가상자산 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화(KRW) 거래량이 미국 달러(USD) 거래량을 추월하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으며, 일부 종목들은 원화 시장 단기 거래량이 스테이블코인 포함 세계 1위를 기록할 때가 많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사용자 수는 명목 이용자 기준 작년 말에 1100만 명을 돌파했다. 전 국민의 21%에 달하며, 국내 개인 주식투자자 수인 1400만 명에 근접한 수치다. 미 중앙은행(Fed)이 추산한 미국 내 가상자산 보유자 수는 전체 성인의 7%, 크립토닷컴이 조사한 전 세계 가상자산 보유자 비율도 7%다. 우리나라 가상자산 보유자는 미국 평균과 세계 평균의 3배인 셈이다.한국인의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에 대한 높은 관심과 지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실제로 가상자산 전문 외신에 한국 시장의 움직임이 자주 보도되어 왔으며, 해외의 유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등 '코리안 크립토'는 업계의 오랜 관심사다.

규제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점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이 이렇게 발달했다는 점이다. 2017년 말께 발표된 정부의 관계부처 합동 긴급대책으로 국내 금융기관은 가상자산의 거래나 투자가 전면 금지됐다. 더 나아가 국내 법인과 해외 거주자들은 거래소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1100만 명의 국내 개인 투자자들만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1위 내수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범국민적 정보기술(IT) 문해력과 신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국내 블록체인 개발자 커뮤니티도 견고하게 형성됐지만, 그것이 가치 창출로 연결되는 길은 막혀 있다. 가상자산의 발행 및 초기 유통(ICO·IEO)이 전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인은 가상자산을 발행하고 사업을 펼치려면 해외에 재단이나 법인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도 현지에서 하고, 세금도 해당 국가에 납부한다. 국내 블록체인 전문 인력들은 국내 고용기회가 극히 적어 해외 프로젝트에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가적 인재 유출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을 위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관련 사업에 진출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괜찮은데 코인은 안된다’라고 하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2018년 초, 한 토론회에서 “블록체인이라는 꽃은 좋은데, 거기에 암호화폐라는 벌이나 벌레들은 다 죽여서 이 생태계를 유지하자는 얘기”라는 언급이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블록체인을 새로운 국가 전략산업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허언이 아니라 국제 사회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스위스, 싱가포르를 비롯해 일본, 중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선진국가들이 최근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보수적 기조를 고수해 온 국가들조차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통해 기회를 만회하려 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그간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필두로 가상자산 관련 산업에 강력한 규제를 가했으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앞장서서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산업을 육성하고 진흥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급선회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도 가상자산 관련 호재는 있었다. 가상자산 거래사업자에 지분을 투자한 국내 기업의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 시 큰 폭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P2E(Play-to-Earn), NFT(Non-Fungible Token) 등 블록체인 기반 신사업에 진출한 경우도 시장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국민연금이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지분을 매입하며 큰 투자수익을 낸 일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대기업이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에서 글로벌 선도기업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블록체인 산업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가상자산 생태계, 도약의 지렛대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은 우리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되찾고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렛대다. 이미 글로벌 선진국들이 앞다퉈 정책 로드맵을 마련하며 생태계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은 단순한 과열 투기 대상이 아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리드할 차세대 기술이자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러한 추세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가상자산을 잠재적인 범죄의 온상으로 취급하며 제도권 금융과 대기업의 진출을 차단하는 규제와 단속에 주력해왔다. 삼성, LG, SK, KT, 롯데 등 국내 대기업들이 2017년 전후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자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지금까지도 큰 진척이 없다. 국내의 인력과 아이디어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는 국내 발행은커녕 거래조차 불가능하다. 자본과 기술력, 우수한 인력이 풍부히 갖춰져 있음에도 정부의 진흥 정책과 의지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다.

범국민적 관심과 이미 자리 잡은 생태계를 기반 삼아 국가적 산업 진흥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블록체인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기존의 단속과 규제 대상이 아닌 미래 신성장동력이자 국가전략산업으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재정의해야 한다. 기업과 투자자, 개발자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적 제조업뿐만 아니라 블록체인과 같은 웹3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실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박정희 대통령과 초고속 통신망을 전국에 설치한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이 절실하다. 지난 총선에서 양당이 내건 친 가상자산 공약들이 지켜지기를, 그래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이 대한민국의 풍요로운 미래에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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