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음이는 엄마와 다녀왔던 키즈 콘서트를 딸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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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Episode 1. 희음(喜音). 기쁜 음악일 수도 혹은 너무 하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는 아이. 첼로를 좋아하는 희음이는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키즈 콘서트’를 갔다. 그리고 생상스의 작품 '동물의 사육제'를 처음으로 보았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보는 일
희음이 세 번의 에피소드 그리고 답가
백조에 붙여준 엄마의 얘기를 지금에 와서 정리하자면 이렇다. “희음아, 콘서트홀 무대에 가득한 현악기의 활들 있잖아, 저 활들의 높이까지 호수에 물을 채운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면 첫 장면을 사진처럼 찍어놓고 눈을 감는 거야. 알았지?” 콘서트홀 무대를 하나의 호수라고 생각하라던 엄마는 조금씩 크기가 다른 현악기들의 활들을 호수의 잔잔한 물결들이라고 상상하라 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의 활이 첼로의 선율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그 활들의 움직임은 잔잔한 호수 위에 새겨지는 물결들이라고. 엄마는 바람도 있다고 했다. 호수 위 잔잔한 물결들을 일으키는 바람. 그 바람의 소리는 하프가 만들어 주고 있다고 했다. 일정한 리듬을 타는, 마치 세 박자 강-약-약의 첫 박은 바람의 시작이고 나머지는 호수 위에 머문 바람인 양. 현들의 활과 하프가 호수를 그려 놓으면 그 위로 백조가 등장한다고 하던 엄마는 그 백조는 첼로가 그리고 있는 것이라 했다. 무대 중앙에 앉아 첼로를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백조’는 정말 엄마가 그려 준 그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한 마리의 백조였을까? 혹시 그래서 여전히 난 첼로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Episode 2. 열심히 첼로를 익힌 희음이는 스물일곱 살이 되어 조카를 데리고 ‘키즈 콘서트’에 함께 간다.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생상스의 작품 '동물의 사육제'는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에 매 곡마다 예쁜 영상들이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어울려 상영되고 있다.
"이모, 첼로 잘하지? 혹시 백조 연주할 줄 알아? 학교에서 '동물의 사육제' 보고 나서 동물 중에서 ‘백조’에 관한 느낌을 적어오래. 이모, 첼로로 한 번 들려주고, 공연도 같이 보러 가줘, 응?“. 희음이는 잠깐 생각했다. ‘엄마의 수위는 너무 감성적이었으니, 살짝 낮추어 조금은 평범하게 이야기해 줘야지. 잘 알려진 이야기처럼 수면 위 백조의 우아함 그리고 그 우아함을 지탱하기 위한 열렬한 물 아래의 발길질. 첼로의 선율은 백조를 이야기하고, 하프는 호수 위 그 우아한 자태를 지키기 위한 물속의 보이지 않는 백조의 발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그때처럼 조카에게도 눈을 감으라고 시키고 첼로로 백조의 선율을 잠깐 연주해 준다. 백조를 들은 조카의 한마디는, “이모, 졸려”.조카와 함께 찾은 ‘키즈 콘서트’는 형식도 많이 변했다. 오케스트라 앞에 피아노 2대가 놓여 있고,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다. 곡마다 변하는 영상에 조카 녀석도 즐겁고 신기한 모양이다. 거북이가 유영하고, 코끼리는 스케이트를, 타악기 연주자는 공룡이 되었다. 마치 가족 같은 세 마리의 백조가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이 조카 녀석은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모! 헤헤, 이모 백조 연주도 좋았는데, 이 영상들 짱이다”. “그러게, 이모도 재미있기는 하네.”
Episode 3. 엄마가 된 희음은 자녀 함음이를 키우며, 함께할 공연의 목록을 정리하고, 연초에 공연명과 일정 그리고 내용을 짧게 요약한 브리핑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 역시도 함음이와 함께할 리스트를 정리하고 전달한다.
“올해 분기별 공연 볼 내용이야. 잘 기억해. 3월에 북콘서트 '세헤라자데'에 갈 거야. 아라비안나이트 얘기 들어본 적 있지? 내레이션으로 책 읽어주고 림스키-코르사코프라는 작곡가의 동명 음악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함께 듣는 거야. 그리고, 5월에는 ‘키즈 콘서트’ 간다. 올해가 40주년 특별기획이라니 재미있을 거야. 가을은 좀 찾아봐야겠고, 12월은 올해도 역시 발레 호두까기인형 보러 간다. 그럼, 올 한 해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 거야.”공연을 보는 일 역시 내 아이에게 루틴 같은 일정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은 모든 엄마가 같은 마음일 테다.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지금의 내 마음이 그러하니까. 근사한 발레 한 편, 멋진 음악회 하나, 화려한 무대장식과 아름다운 세트의 오페라 한 편을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해마다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다면 희음 주니어는 엄마보다 나은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지닐 수 있을 거라 희망해 본다.
살다 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부모의 마음이 있는 듯하다.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보며 호수와 바람과 백조를 설명하는 엄마의 마음을 그 당시 어찌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 아이와 첫 ‘키즈 콘서트’에 가는 올해, 엄마를 능가하며 더욱 현란하고 화려한 수사를 붙여 함음이를 매혹하리라! 반드시!
마지막 에피소드는 희음의 답가. 희음이는 틈을 내어 오스트리아 도시 빈의 무지크페라인과 미국 도시 뉴욕의 에버리피셔 홀(현재 데이비드 게펜 홀)을 다녀왔다. 황금홀의 객석을 채우는 그 의자가 무대 밑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일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무대에 특별히 덧마루를 설치하지 않는 악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틀간 펼쳐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본 후, 희음이는 자신을 위해 애써준 부모에게 마치 일기처럼 글 하나를 쓰고 제목을 붙였다. ‘구어체로 꾸는 0cm의 꿈’이라고.“믿거나 말거나인 말 중에 ‘성운聲雲’이란 말이 있어. 소리의 구름이라고 하면 될까? 오케스트라 소리의 이상향을 꿈꾸며 누가 만든 말인 것 같은데, 지휘자 조금 앞쪽의 허공에 모든 악기의 소리가 모여, 객석에서 보면 그게 구름처럼 보이는 착각을 한다는 거지. 착-착-착 높이가 상승하는 목관·금관·타악기들의 연주는 직접 들리는 소리가 강해서 잘 몰랐는데, 보이지 않는 악기들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청중을 향해 ‘들어봐’라고 자랑하기보다는 ‘우리의 소리 속으로 들어오렴’ 하며 사근사근 꼬시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 제1, 제2 바이올린의 쐐기, 목관-금관의 쐐기, 저음현의 쐐기, 마치 3개의 쐐기가 지휘단을 향해 예쁘게 박혀있는 것 같은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더더군다나 내 생각을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하고.”“이번에는 1층 객석도 내려볼래. 경사진 콘서트홀 객석도 0cm로 맞추고, 1m 남짓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짓는 무대의 에지도 0cm로 낮출게. 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이제 오스트리아의 도시 빈의 무도회장 같아진 거야. 첫째 날, 둘째 날 모두 재미난 일이 있었어. 첫날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2악장 혼 솔로에서 그랬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혼 주자한테 걸어가셔서 솔로를 하는 동안 연방 엄지를 내밀고, 소리 없는 박수를 하고, 솔로가 끝나니까 심지어 안아주셨다니까.
둘째 날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적 무곡>이 백미였어. 엄지와 중지의 딱딱거림을 딱딱 맞추며 시작된 청중의 유희는 ‘맘보’를 외치며 절정에 올랐는데, 마치 오래된 미국영화 속의 음악과 춤을 듣고 보고 있는 것 같더라니까. 흥에 겨운 무대 쪽은 오케스트라 연주회, 그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고 있는 객석 쪽은 뮤지컬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으니까. 끝으로, 이틀 모두 왔던 함음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이 아이는 이틀 내내 객석 공간을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쳤어. I Love New York!, I Love Alan!이 주 메들리였는데, 참 별난 아이도 다 있지 뭐야.”
[하늘의 원작자 역시 흐뭇했을 듯한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의 ‘맘보’]
엄마가 상상시켜 주곤 했던 그 호수 위 자욱한 물안개는, 희음이가 함음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이미 아름다운 소리 가득한 성운(聲雲)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