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모처럼 오르는데…"랠리 오래가지 않을 것" 고수의 조언 [진영기의 찐터뷰]

2차전지 연구원 2인 인터뷰

2차전지주, EU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 소식에 강세
"상승세, 오래가지 않을 것…펀더멘털 부진 영향"

"작년 2차전지 광풍 때와 현재는 상황 180도 달라"
"주가 저평가·기술력 갖춘 종목에 주목"
장정훈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이사)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2차전지주가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에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업체의 판로가 막히면 국내 배터리 업체는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2차전지주가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도 나온다.

다만 장정훈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이사)은 이번 랠리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장 이사는 2007년부터 18년간 2차전지 시장을 분석해왔다. 그는 유럽발 호재는 단기 트레이딩 재료일 뿐 주가를 오래 지탱할 만한 힘이 없다고 판단했다.

"2차전지주 반등 일시적, 변동성 주의해야"

장 이사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유럽의 고율 관세는 이번에 처음 전해진 소식이 아니다"라며 "지난달부터 보도된 뉴스이기 때문에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유럽 관세 이슈가 국내 업체 펀더멘털에 주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6월은 '실적 공백기'로 작은 이슈에도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1분기 실적은 5월, 2분기 실적은 7월에 공개된다. 사이에 끼인 6월은 실적 공백기로 분류된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원도 장 이사와 같은 의견을 냈다. 수급이 몰려 데드캣 바운스(폭락 후 일시적 반등)가 나타났을 뿐 하락 압력은 변함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2차전지 기술·원리를 투자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최근 에코프로비엠에 '매도' 의견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목표주가는 15만원으로 최근 1년간 증권가에서 제시된 목표가 중 가장 낮았다.

정 연구원은 "'국내 2차전지 산업이 망했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라는 전제를 깔았다. 2차전지의 경우 산업의 성장성만으로 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기차 시장과 2차전지 산업이 성장할 것이란 전망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미국 외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점유율이 점차 낮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2차전지주는 여전히 고평가 영역에 있다"고 설명했다.

"2차전지 고점 대비 하락했지만, 실적 눈높이도 낮아져 밸류 부담 여전"

전문가들은 2차전지 광풍이 불던 작년과 지금의 상황이 180도 달라 단기간에 고점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등 정책성 재료가 풍부했지만, 현재로선 추가 호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금리 환경이 길어진 점도 부담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아있던 호재마저도 사라질 위기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 후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IRA 보조금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장 이사는 "정책 호재는 불확실해졌고, 전기차 시장은 캐즘(대중화 직전 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졌다. 아울러 리튬 등 원재료 가격도 바닥을 기는 등 작년과 지금의 2차전지 업황은 정반대"라고 했다. 이어 "이익이 2배 이상 늘어야 주가가 구조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이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히려 하방이 열려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형 2차전지주 대부분의 주가는 작년 고점에 비해 반토막 났다. 다른 조건이 같고, 주가만 내려가면 밸류에이션 부담도 줄어든다. 2차전지 업체의 경우 주가 하락과 함께 실적 전망치도 하향 조정됐다.장 이사는 "주가가 하락해 겉으로 보기엔 저렴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밸류에이션을 감안하면 2차전지주는 오히려 비싸졌다"며 "작년엔 2차전지 외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자금이 몰린 경향도 있는데, 지금은 인공지능(AI) 관련주, 식품주, 전력기기주 등 대안이 많아 2차전지가 외면받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양극재 업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7배로 전월(44배) 대비 높아졌다.

정 연구원은 "지난해 2차전지주 랠리는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 현상이 촉발했다"며 "주가가 과하게 올랐기에 정상화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것이 주가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2차전지주, 옥석가려 투자해야…삼성SDI·LG화학·나노신소재 주목"

전체적인 2차전지 시장 전망은 어둡지만, 옥석을 가려 투자한다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평가됐거나 기술 경쟁력을 갖춘 업체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라는 취지다. 정 연구원은 삼성SDI, 나노신소재 등을 하반기 최선호주로 꼽았다. 삼성SDI는 저평가 매력, 나노신소재는 기술력에 주목했다.정 연구원은 "2025년 실적 추정치 기준 삼성SDI 전지 사업 부문의 PER은 약 10배로 중국, 일본 업체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미국 매출 비중이 작아 국내 업체에 비해 저평가됐지만, 미국 공장이 가동되면 경쟁사와의 밸류에이션 차이가 좁혀질 수 있다"고 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GM과 각각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미국 인디애나주에 공장을 짓고 있다.

실적도 경쟁사에 비해 견조하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가운데 1분기 흑자를 기록한 곳은 사실상 삼성SDI뿐이다. 삼성SDI는 1분기 영업이익 2674억원을 거뒀다. 미국 정부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한 영업이익도 2400억원 수준이다.
삼성SDI 헝가리 법인. / 사진=삼성SDI
정 연구원은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술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차전지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재가 바뀔 수 있다"며 "올해부턴 실리콘 음극재가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최선호주로 꼽은 나노신소재는 실리콘 음극재용 도전재를 만들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차세대 소재로 꼽힌다. 흑연을 대체해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4680 배터리에 실리콘 음극재가 적용된다. 실리콘 음극재는 충·방전을 반복하면 부피가 팽창하는 단점이 있는데, 도전재를 적용하면 이를 완화할 수 있다.

장 이사도 삼성SDI에 주목했다. 공격적인 투자로 저평가에서 벗어날 것이란 분석에서다. 그 외 LG화학도 투자 매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선정이다.장 이사는 "LG화학의 신용등급 전망 하락은 LG에너지솔루션의 영향이 크다"며 "양극재 업체 중 LG화학의 실적은 양호한 점을 감안하면 해당 리스크가 주가에 과하게 반영됐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삼성증권은 2분기 LG화학 양극재 사업의 영업이익이 470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가동률이 높아진 점도 호평했다. LG화학 첨단소재 부문 가동률은 62.1%로 작년 말 53.9%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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