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유죄판결 '여진'…"진료 회피 부추겨"vs"의무이행 안한 것"

파킨슨병 환자에 항구토제 처방…법원, 금고형 집행유예
의료계 "최선의 치료 막는 판결"…면허취소는 '가짜뉴스'
파킨슨병 환자에 약을 잘못 처방해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 유죄 판결이 나온 것과 관련, 의료계에서 여진이 지속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선한 목적을 가지는 의료 행위의 특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의사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꼬집는다.

◇ 파킨슨병 환자에 항구토제 처방 의사 '금고형 집행유예'…"방어 진료 부추겨"
12일 의료계에서는 최근 창원지법에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60대 의사 A씨에게 유죄를 내린 판결을 두고 '이러면 누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가 확산하고 있다.

A씨는 파킨슨병을 앓는 80대 환자 B씨에 멕페란 주사액(2㎖)을 투여해 부작용으로 전신 쇠약과 발음장애, 파킨슨병 악화 등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의 병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약물을 투여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도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A씨는 고령인 피해자를 문진하면서 내원 이유를 물었을 뿐 파킨슨병 등 피해자의 기왕력(병력)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며 "업무상 주의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어 "피고인 스스로도 '피해자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면 멕페란 주사 처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 피해자의 기왕력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멕페란을 투여한 것은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상세정보에 따르면 맥페란 주사제는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않게 돼 있는 약물이다.

같은 정보에서 파킨슨병의 병력이 있는 환자에게 메토클로프라미드를 투여했을 때 파킨슨병의 증상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신중히 관찰하며 투여해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멕페란을 두고 파킨슨병 환자에 절대 '금기'라기 보다는 의사의 판단하에 충분히 쓸 수 있는 약이라고 봤다.

대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 학회는 "사건의 쟁점으로 등장한 멕페란 주사제는 임상에서 수많은 환자가 구역, 구토 증상 조절을 위해 흔히 사용된다"며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파킨슨 증상을 악화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환자에 '최선의 치료'를 시행하는 걸 주저하게 하는 판결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회는 "환자 치료라는 선량한 의도와 목적을 기반으로 한 의료행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의사들로 방어 진료와 진료 회피를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완전무결하지 않는 한 처벌대상 되는 현실" VS "병력 확인 안한 건 잘못"
의사들 대부분은 학회의 의견에 동감하며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현장에서는 약물에 위험성이 있더라도 환자 치료에 유용성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최선의 치료 효과를 내기 위한 의료행위를 주저하게 되고, 결국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서울시내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하다못해 타이레놀도 간 독성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절대 안 쓰는 건 아니지 않냐"며 "대체 약물 등을 다 고려해서 적정한 처방을 내린 걸 텐데 (결과가 그렇다고 해서) 그게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형사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한국에서 의사로 사는 게 너무 위험한 상황이 된다"며 "완전무결하지 않은 한 언제든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질타했다.

방어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미 일부 보건소에서는 '부작용에 대처하기 어려운' 약물을 처방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보건소에서는 창원지법 판결 내용을 알리며 "부작용 대처가 어려운 보건지소 및 전문과목 특성을 고려해 상당한 사유 없이는 일부 약물들을 처방하기 어렵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들은 반응은 사뭇 다르다.

환자들은 의사가 '병력'을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명확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변인영 한국췌장암환우회 회장은 "의사가 환자에 어떤 질환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니느냐"며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안 해서 환자가 악화했는데 거기에 의사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건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료계 내부에서는 금고형을 받은 A씨가 면허 취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퍼지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개정된 의료법은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지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예외다. 법조계 관계자는 "의사의 의료 행위에서 벌어지는 과실, 즉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의사 면허 취소나 정지 대상이 아니"라며 "의료법 개정 당시에도 이 부분은 예외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