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우크라전 징집 거부' 러시아인 난민 지위 첫 인정

반전시위 참여 이력 등 근거로 '정치적 징집 거부' 판단
러시아 '탈영병 처벌 강화'에…"박해받을 우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징집에 거부해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인의 난민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윤성진 판사는 지난달 22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러시아인 A씨가 제기한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자신의 SNS에 전쟁 반대 의견을 게시하고, 전쟁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후 징집 통보를 받자 같은 해 11월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입국했다. 이듬해 1월 A씨는 "전쟁 징집을 피하고자 러시아에서 탈출했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면 처벌될 수 있다"며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사건의 쟁점은 A씨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 징집을 거부한 것인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징집을 거부할 경우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이었다. 난민법과 난민협약 등에 따라 인종·종교·국적 등 사회적 신분이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된다.

대법원 판례는 단순히 강제징집을 거부했다는 것만으로는 박해의 원인이 될 수 없지만, 징집 거부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박해의 원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재판부는 A씨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글을 SNS에 게시하고, 현 러시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주최한 전쟁 반대 시위에 참석한 점 등을 종합하면 그의 징집 거부가 정치적 견해 표명이라고 봤다. 아울러 "러시아가 탈영하거나 전투를 거부한 병사에게 최대 10년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러시아군 당국이 전장에서 탈영한 병사를 살해했다"는 언론 보도를 근거로 A씨가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A씨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징집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박해를 받을 공포도 근거가 있으므로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 결론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본국에서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대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외부적으로 표시해왔다는 주장은 일관되고 설득력이 있다"며 "정치적 의견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징집을 거부해 본국에서 박해받게 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는 "법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징집을 거부한 러시아인의 난민 신청을 인정한 첫 사례로, SNS 표현과 시위 참여 등도 '정치적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여 난민 인정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반인도적 성격의 전쟁에 대한 단순 징집 거부까지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