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또 좌초…지역주택조합 '줄파산' 공포

봉천동 1042가구 '서울대역 편백숲2차' 결국 파산

고금리 여파로 자금조달 막혀
조합 설립된 곳마저 파산 속출
납부한 분담금 못 돌려받게 돼

서울서만 추진 사업지 100여곳
성공률 10%대인데다 '지지부진'
일각선 '제도 전면폐지' 주장도
올해 들어서도 서울 지역 내 지역주택조합의 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고금리로 금융 비용이 급증한 데다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어려워지면서 힘들게 조합을 설립하고 나서도 파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이 파산하면 내 집을 마련하기는커녕 조합에 납부한 분담금마저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법원에서 회생 신청도 ‘기각’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18부는 지난 10일 ‘행운동 더퍼스트힐(옛 서울대역편백숲2차) 지역주택조합 설립추진위원회’의 파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에게는 지급 불능 및 부채 초과의 파산 원인 사실이 존재하므로 관련 법을 적용해 파산을 선고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행운동 더퍼스트힐 지역주택조합 추진위는 서울 봉천동 66 일원에 총 1042가구 규모 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2008년 봉천동에 처음 사무실을 열었고 2019년 11월 창립총회를 거쳐 본격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추진위는 사업지가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인접한 점 등을 내세워 사업성을 홍보했다.

하지만 토지사용 권한 확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등 사업이 오랜 기간 미뤄졌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 상당수가 가입계약을 해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은 가입자들의 분담금 납부마저 지연되면서 추진위의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결국 추진위는 작년 11월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를 초과함이 명백해 회생보다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채권자 이익에 부합한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고, 이날 파산 선고까지 이어졌다.

○작년 서울에서만 4곳 파산

지역주택조합 파산은 최근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법원 파산 사건 공고를 전수조사한 결과 전국 지역주택조합 파산은 2020년 1건, 2021년 1건, 2022년 0건에서 지난해 6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4건은 상도동 장승배기, 서울대역 관악 파크1차 등 서울에서 나왔다.

지난해 파산 선고를 받은 지역주택조합 가운데 3곳은 추진위 단계가 아니라 조합이 설립된 곳이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토지 사용 면적의 80% 이상 사용 동의서를 확보해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미 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된 곳에서도 파산 선고가 잇따른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이 파산한 원인으로는 고금리에 따른 금융 비용 상승,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거절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점이 꼽힌다. 토지주가 사업 주체인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토지담보대출을 통해 토지부터 확보해야 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 특성상 자금난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한계 상황에 이른 조합 가운데 출구전략으로 법원 파산을 이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낡은 제도’ 지적에 폐지론까지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소유자들이 스스로 토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마케팅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지역주택조합 추진 사업지는 서울에서만 100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입주까지 가는 조합은 전체 사업 중 17%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계획 승인 조건(토지 95% 이상 소유) 등을 맞추기 어렵고,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는 사업 기간 때문에 땅값과 공사비가 지속해서 올라 추가 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례가 많다. 지역주택조합 운영진의 사기·횡령 사건도 꾸준히 불거지고 있다.

이에 지역주택조합 제도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변호사는 “도심에 빈 땅이 많아 토지 확보가 쉬운 1970년대 도입된 제도로, 고밀 개발이 이뤄진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