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기숙사부터 AI까지…세계 투자시장 주무르는 '1100兆 갑부'

DEEP INSIGHT

국민연금 어디 투자했나 봤더니

1988년 5000억으로 출발
현재 '기금 1101조원' 굴려
지난해 해외 수익만 '73兆'
수출기업 10곳 영업익 넘어

해외 랜드마크 빌딩부터
도로·항만 등 인프라까지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
우리나라엔 지난해 무려 126조7000억원을 벌어들인 기관이 있다. 해외에서만 73조원의 수익을 냈다. 현대자동차(15조1000억원), 삼성전자(6조5000억원) 등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 10곳의 영업이익 합산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바로 국민연금공단이 주인공이다.

1988년 5000억원에서 출발한 국민연금은 2003년 100조원, 2015년 500조원을 넘어선 뒤 올해 1100조원으로 불어난 ‘거대 항공모함’이 됐다. 일본 공적연금(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 자리에 오르며 명실상부 ‘국가대표’ 투자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산 규모 증가와 함께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명함이 갖는 위상도 더욱 커졌다.

전 세계 운용사들이 전주로 몰리는 이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내총생산(GDP·2236조원)의 절반 규모에 육박하는 1101조원 규모 기금을 운용한다. 이 기금 적립금은 1988년 연금 제도 도입 이후 국민들이 낸 연금보험료(812조원)와 기금운용본부가 운용해 벌어들인 운용수익금(639조원)으로 조성한 금액(1451조원)에서 연금 급여로 지출한 금액(350조원)을 뺀 값이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16년 뒤인 2040년까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040년이 되면 1755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2055년 소진될 것이란 게 지난해 발표된 5차 재정계산 결과다.

고속도로·헤지펀드까지 투자군 다양

국민연금은 투자자산 1101조원 가운데 국내와 해외에 각각 504조원, 597조원을 분배하고 있다. 자산군 중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는 곳은 단연 주식이다. 절반에 가까운 비중인 47.5%(523조원)를 담고 있다.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 중이다. 안정성을 보강하기 위해 전체 운용자산의 36.4%인 401조원을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다.다양한 대체투자 자산에도 나눠 투자하고 있다. 대체투자는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헤지펀드 등의 자산으로 분류된다. 대체투자엔 전체 자산의 15.8%인 174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해외 고속도로와 항만처럼 인프라 자산에 투자하거나 랜드마크 건물에 투자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중심부인 세실 스트리트에 자리한 프레이저스타워와 서울 청진동에 있는 그랑서울도 국민연금 투자 자산이다. 인프라 자산인 미국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밴티지 데이터센터, 싱가포르 유니버설터미널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세계 3대 연기금에 걸맞게 블랙스톤, 칼라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유수의 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에도 출자한다. 그 운용사들에 국민연금은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전 세계 주요 운용사 수뇌부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찾아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전북 전주로 몰려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은 오피스, 호텔, 리테일처럼 전통적인 부동산 투자 분야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노인 요양시설, 병원, 학생 기숙사, 산림 등을 비롯한 부동산 틈새시장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PEF에도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수합병(M&A)을 할 때 국민연금 자금이 녹아들어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국민연금이 올해 PEF 등 국내 사모 부문에 출자하는 규모는 1조5500억원에 달한다.

성장 끝나는 국민연금…자산 관리 집중

기금이 2040년까지 증가한다고 해서 계속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2027년이 되면 기금 성장기가 끝난다. 기금 성장기가 종료되면 한 해 동안 지급해야 하는 연금 급여를 연금보험료 수입만으로 충당할 수 없다. 운용수익금도 헐어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 경우 투자해 놓은 자산을 매각해야 해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1100조원대로 불어난 자산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기준 포트폴리오를 도입해 통합적으로 기금의 자산 배분을 관리해 나가려는 모습이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통합 포트폴리오 운영체계(TPA)로, 자산군별 칸막이를 낮춰 신규 자산을 유연하게 편입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올해부터 부동산플랫폼투자팀, 사모대출투자팀, 해외투자기획팀을 신설해 다양한 투자 자산을 관리하고 새 수익원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연기금으로 가기까지 갈 길이 멀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몸집이 커졌지만 평균 수익률을 보면 캐나다연금투자(CPPI)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기금 운용의 독립성, 자율성, 전문성을 키워 운용역들이 리스크 대비 높은 기대수익률을 누릴 수 있는 투자처를 발굴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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