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中 접근 막아라"…美, HBM까지 규제

美 '반도체 굴기 저지' 총력

최첨단 반도체 GAA 칩 등
기술 상용화 초기부터 차단

美 규제에 반도체 판도 변화
"中 첨단기술 상용화 늦어지면
HBM 주도 韓반도체 반사이익"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생산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추가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규제 대상으로는 한국 반도체업계가 선도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게이트올어라운드(GAA)가 거론된다. 최종 규제 결과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I 초기 기술부터 봉쇄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미국이 AI용 반도체 기술에 중국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규제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블룸버그에 “중국이 초기 단계의 AI 반도체 기술을 완전히 상용화하기 전에 미국이 중국의 기술 접근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선적으로 논의되는 규제 대상은 GAA와 HBM 등이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지만 GAA, HBM 등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GAA는 반도체의 기존 트랜지스터 구조인 핀펫의 한계를 극복한 차세대 기술이다. 핀펫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전력 효율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삼성전자가 2022년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 GAA를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GAA를 앞세워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를 넘어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TSMC는 내년 2나노 공정에 GAA를 처음 적용할 계획이다.

HBM도 규제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은 뒤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D램이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HBM3E 8단 제품의 초기 생산을 시작한 데 이어 2분기 안에 12단 제품을 양산한다는 목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다.

○규제 방향 따라 업계 판도 변화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HBM보다 GAA 관련 규제 논의가 더 진척됐다고 전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GAA 규제 초안을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자문위원회에 보냈고 답변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를 도입하기 전 다양한 견해를 듣는 단계로, 규제 골격과 구체적 내용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GAA 규제가 중국의 자체적인 GAA 칩 개발 능력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출지, 더 나아가 미국 반도체업체를 비롯해 해외 업체들이 중국 업체에 제품을 파는 것까지 차단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판매 금지로 결정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체의 대중 수출이 막힐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출 규제가 시행되더라도 중국이 아프리카 등지의 우호국을 통해 HBM 등을 우회 수입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이 HBM이나 GAA 칩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 및 공정 기술 등 개발 능력을 제한하는 수준으로 대중 규제에 나서면 삼성전자 등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나 AI 기술 개발 등에서 발목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중국시보 등 대만 언론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출시할 예정인 AI 칩 성능이 엔비디아의 차기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200에 필적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러시아 유입도 차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출 규제 확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해왔다. 기존 수출 규제는 미국산 제품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신규 규제는 러시아에 반도체를 판매하는 중국 내 기업 등이 표적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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